각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적인 이동제한과 휴교, 휴업,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국경까지 차단하는 봉쇄령을 꺼내 들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이와 반대 노선을 택한 나라가 있어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 나라 국민들은 따뜻해진 봄날씨를 즐기며 평소처럼 자유롭게 외출해 공원, 상점, 카페 등을 거닐고 있다. 중앙정부도 봉쇄령은 커녕 오히려 국민들에게 집밖으로 나가 재미있게 지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를 자랑하는 북유럽의 스웨덴 얘기다.
지난 2일( 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이자벨라 로빈 스웨덴 부총리는 코로나19는 장기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 다른 유럽국들과 달리 사회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로빈 부총리는 “이건 마라톤이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라며 “어떤 조치라도 아주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스웨덴이 봉쇄 대신 일상생활이 가능한 ‘집단 면역’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를 ‘집단면역(herd immunity)’ 실험이라고 부른다. 집단 면역이란 바이러스가 완치돼 항체를 보유하거나 예방 백신을 맞은 집단 구성원의 상당수가 면역력을 보유한 상태를 의미한다. 면역을 획득한 구성원이 늘어나면 바이러스가 옮겨 다닐 숙주를 찾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통상 인구의 50~70% 정도가 감염됐을 때 자연스럽게 집단 면역이 생겨 확산을 멈출 수 있다는 게 스웨던 정부의 판단이다.
BBC에 따르면 전염병 학자인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 한국처럼 간신히 노력해 바이러스를 없애는데 성공하더라도 한국 (당국) 조차도 유행이 다시 돌아올 것을 예상한다”며 “이 병이 그냥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유행이 서서히 진행되게 노력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스웨덴 여론조사기관 칸타르시포에 따르면 보건당국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월 65%에서 3월에 74%로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NBC는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오랜 전통과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이 스웨던 중앙정부가 장기전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 정부가 봉쇄령이 아닌 전공법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스웨덴 특유의 사회문화적 특성에서 기인한 자신감 때문이라고 전문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스웨덴 가구의 절반 이상은 1인 가구로 유럽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다.
통상 18~19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유럽 평균 26세보다 훨씬 낮다. 그래서 대가족 문화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의 주변 유럽국가 보다 가족내 감염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스웨덴 국민성도 한몫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가까이 붙어 앉거나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는 스타일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또 다른 요소라는 것이다. 스웨덴 문화에 관한 책은 쓴 롤라 아킨마데 아케스트룀 작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 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부터 사회적 풍토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웨덴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25명으로 이탈리아 205명, 스페인 94명에 비해 월등히 낮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스레 실천되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 정부가 제세한 코로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집단면역 60% 수치는 유의미한 수치일까.
집단면역의 구체적 비율을 산출하기 위한 지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감염병 재생산지수(Reproduction Number, R0)와 백신유효율(Vaccine Efficacy, Ve) 수치다. 감염병 재생산지수는 한 사람의 감염자가 몇 명을 전염시킬 수 있는지를, 백신유효율은 백신을 접종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얼마나 덜 감염되는지를 나타낸다.
스탠리 플로트킨 펜실베이니아대학 석좌교수가 발표한 ‘Clinical Infectious Diseases(CID)’라는 논문에 따르면 “임의의 백신을 가정한 상태에서 집단면역 역치를 구하는 공식은 1-1/R0로 전염성이 가장 높은 홍역의 경우 R0는 약 12~18 수준”이라며 “이 경우 집단면역 역치는 91.6%~94.4%로 전체 인구의 94.4%가 홍역에 대한 면역력을 가져야 홍역을 완전히 억제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코로나19에 적용하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R0값을 1.4~2.5명으로 추정을 근거로 최대치인 2.5명을 가정하면 60%라는 값이 나온다. 전체 국민의 60%가 접종받아야 코로나에 대한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코로나19의 경우 백신 개발이 요원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수치라는데 반대 의견도 많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현재 스웨덴의 치사율은 5.5% 수준을 기록 중이다. 그렇지만 집단면역 달성 과정에서 수백~수천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룬드 대학의 마르쿠스 칼손 수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에 ‘집단면역은 근거가 없는 접근법’이란 주제로 영상을 올렸다. 그는 “정부가 1,000만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친 실험을 시작했다며 총리는 스웨덴 국민으로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웨덴 정부정책을 두고 일각에서는 ‘도박’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주변국의 움직임은 스웨덴으로서도 부담이다. 영국의 경우 초기에 스웨덴과 비슷한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런던 임페리얼칼리지가 “영국에서도 코로나19로 26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자 방역 대책을 급변경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대국민 성명을 통해 “수퍼마켓과 약국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들은 즉시 문을 닫아야 한다”며 강경 대응책을 예고했다.
이런 탓에 전 세계적으로 집단면역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 전략이 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요아킴 로클뢰브 스웨덴 우메아대 감염병 학자는 영국 일간지 더타임즈에 “집단면역의 전제는 인구 대부분이 면역력을 가질 때까지 차분하게 감염이 진행된다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과학적 증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아 정부 방침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꼬집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