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장’ 속 둘째로 등장한 이선희 배우는 ‘금옥’의 무거운 가방이 그녀의 인생을 암시한다고 했다. 가부장적 시대에 눌려있는 인물인 금옥을 연기한 이선희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기 보단, 결핍을 채우려는 사람이다”고 인물에 대해 소개했다.
이선희는 최근 화제 속에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큰 사랑을 받은 ‘옹벤져스’ 중 막내 백반집 사장 ‘정귀련’ 역을 맡아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25일 개봉한 영화 ‘이장’은 아버지의 묘 이장을 위해 오남매가 모이고, 오랫동안 집안에 뿌리박힌 차별을 날카롭게 그려낸 우리가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
최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보드레 안다미로 카페에서 만난 이선희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연극배우 박윤석과 결혼한 4년차 주부이기도 한 이선희는 “서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어쩔 수 없이 굴러가야 하는 이 상황들이 연속되다 보니까 재미를 주는 영화이다”고 설명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아버지 묘 이장 건으로 만나게 된 오 남매는 결국 1박2일 간의 소동극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우리 가족은 어떤 가족인지 한 번 세밀하게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대학로 스테디셀러 연극 ‘보고싶습니다’를 쓴 극작가이기도 한 이선희는 정승오 감독의 필력에 한번 감탄하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이 갔다고 했다.
“제가 ‘가족’ 이야기를 써온 극작이기도 하잖아요. 시나리오를 보는데 입이 쩍쩍 붙게 써놓으셔서 고민의 여지를 1도 안 했을 정도로 바로 결정했어요. 감독님이 저희 집 근처로 오셔서 미팅하고, 2시간 만에 한다고 했죠. 나이가 있는 감독인 줄 알았는데, 젊은 감독이란 점도 놀란 점이었죠.”
영화 속 ‘금옥’은 알뜰살뜰하게 먹을 음식들을 싸오며 언니와 동생들을 챙기는 정 많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늘 가족들의 눈치를 살핀다. 이를 놓고 배우는 “저는 이 인물이 볼수록 너무 불쌍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이지 않은 아이가 현실적인 척 한다” 며 “늘 ‘돈’ ‘돈’ ‘돈’을 외치는 데 잡을 게 그거 밖에 없어서 그렇게 외치는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과연 이 여자가 이혼을 할까? 생각해보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냥 이렇게 살 것 같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둘째의 가방 속엔 커피, 귤 등 늘 음식이 담겨있다. 늘 동생들을 잘 챙기는 언니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이선희는 ‘금옥’은 어렸을 때 늘 눈치보고 살아왔던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렇기에 “이 가족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남으려고, 가방 안에 늘 자매들이 좋아할 음식들을 챙기고 다녔을 것이다”는 답변을 내 놓았다.
위에서는 큰언니가 무시하고, 아래서는 여동생이 무시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못 내는 ‘금옥’과 인간 이선희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다. 손이 귀한 집의 딸로 태어난 이선희는 늘 공주대접을 받고 살았단다. 불합리한 가부장제와는 전혀 다른 집안에서 자란 배우는 “제가 금옥이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게 그 과정까지 가는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으나 오히려 그 답답함이 역할에 녹아들어 자연스런 연기가 나온 것 같아요. 처음엔 ‘이럴 수가 있나?’ 싶다가 ‘이럴 수도 있어’ 하고 마음이 바뀌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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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과 밀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이선희는 실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영화의 후반에서 만날 수 있는 동백꽃 사진과 보내지 못한 문자는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배우는 늘 자신을 짝사랑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편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사춘기때, 아버지가 늘 ‘사랑한다 공주야’라고 시작하는 쪽지를 써 주셨어요. 글씨도 멋스럽게 잘 쓰시는데 그 멋진 글씨로 편지를 적어서 식탁에 놓고 가셨는데, 맨날 써 놓으니 당시엔 소중한 걸 몰랐어요. 그 동백꽃 장면은 아버지의 고마운 줄 몰랐던 메시지가 생각나는 장면이기도 해요.”
서울예대 극작가 출신인 이선희는 대학로 스테디 셀러 연극 ‘보고싶습니다’를 시작으로 ‘행복’ ‘헤드락’등을 쓴 극작가이자 배우다. 2002년 연극 ‘오델로,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로 데뷔한 이선희는 이후 ‘연극열전’, ‘가을 반딧불이’, ‘헤드락’ 등 다수의 무대에 올랐다. 이후 영화 ‘의뢰인’, ‘변호인’, ‘곡성’, ‘봉이 김선달’, ‘이장’, 드라마 ‘추리의 여왕’, ‘백일의 낭군님’ 등 에 출연했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선희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연극 ‘보고싶습니다’ 속 대사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실제 어머니가 전해 준 가르침이기도 하다.
“제가 어린 시절, 징징될 때마다 엄마가 해주신 말이 있어요.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고요. 다 얻거나 다 잃은 건 없는거죠. 제가 그 말을 너무 좋아해서 연극 대사에 썼어요. 인생이란 게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잖아요. 내 의도와 상관없이 부풀려지거나, 한 없이 웅크리게 만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곧 ‘좋은 일도 생길 거야’ 란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이선희는 스펙트럼이 다양한 배우를 꿈꾼다. “‘엄마’로 가기까지 많은 여성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미약하지만 천천히, 포복 자세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진=양문숙 기자]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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