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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라라걸]꼰대 아재들이여 똑똑히 보라, 눈부신 나의 질주를

호주 최대 경마대회 멜버른컵

첫 여성 우승 기수 페인의 실화

男중심 스포츠에 대한 편견 깨

감독·작가도 모두 여성이 맡아

영화 라라걸의 한 장면. 여성 기수 미셸 페인의 멜버른 컵 우승을 다룬 실화 영화다.




2015년 11월 3일, 호주 멜버른 플레밍턴 경마장.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석을 가득 채웠다. 경마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TV와 라디오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멜버른 컵은 2차 세계대전 때도 취소되지 않았던 호주 최대 이벤트다. 오죽하면 호주인들이 ‘국가를 멈춰 세우는 경주(The race stops a nation)’라고 부를까. 3,200m 레이스 내내 순위는 엎치락뒤치락한다. 선두로 달리던 말이 뒤처지면 한숨이, 뒤따르던 말이 좁은 틈을 비집고 치고 나오면 환호성이 터진다. 숨 막히는 질주 끝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기수는 우승확률 1%라 했던 미셸 페인이다. 15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기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코로나 한파’를 뚫고 오는 15일 개봉하는 ‘라라걸’은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 분)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실화 기반 영화가 늘 그렇듯 주요 사건과 결말을 미리 알고 관람을 하는 터라 짜릿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미셸이 힘겨운 도전 끝에 승리를 일구는 과정은 실화라서 더 큰 감동을 준다.

미셸의 실제 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승 당일 그녀는 흰색과 보라색 기수복과 초록색 모자 차림으로 트랙을 질주한다. 이 세 가지 색깔은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에 나섰던 서프러제트의 상징색이다.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갖기 위해 투쟁하던 여성들이 입고 쓰고 흔들었던 색이다. 미셸은 우승 직후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이렇게 말한다. “경마는 광적일 정도로 남성 위주 스포츠다. 많은 마주들이 나를 내쫓으려 했다. 여성은 충분한 힘이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금방 우리가 이겼다.”

영화 라라걸. 주인공 미셸 페인은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경마를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미셸의 호주에서 유명한 경마 가문의 10남매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생후 6개월에 엄마를 잃었다. 어릴 때부터 마구간을 제 방보다 편하게 여기며 자랐지만, 기수였던 언니 중 한 명이 경기 중 낙마로 세상을 떠나자 경마 스승인 아버지는 미셸의 출전을 반대한다. 하지만 아버지만큼 고집이 셌던 미셸은 늘 경마장으로 향했고, 3,200번 출전에 361번 우승했다. 그러다가 그녀 역시 2004년 낙마 사고로 전신 마비를 겪게 된다. 그런 미셸 곁을 늘 지켜주며 응원해준 사람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오빠 스티비다. 그는 미셸의 말 ‘프린스 오브 펜젠스’ 관리사 자격으로 멜버른 컵에도 함께 출전한다. 영화 속 스티비 역할로는 스티비 페인이 직접 출연했다.

영화 라라걸의 한 장면. 여성 기수 미셸 페인의 멜버른 컵 우승을 다룬 실화 영화다.


21세기에도 만연한 성차별과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리는 미셸의 이야기는 여성 영화 감독과 여성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영화는 호주배우 레이첼 그리피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각본은 엘리스 맥크레디가 맡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작은 아씨들’처럼 여성의 서사를 여성 감독과 작가가 끌어낸 또 하나의 ‘트리플 F’ 등급 영화다. 다만 등장인물의 감정이 종종 지나치게 격해지고 사건이 급전환되는 점 등은 다소 아쉽다.

원제는 ‘여자답게 달려라 : RIDE LIKE A GIRL’이다. ‘여자답다’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러닝타임 98분.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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