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프로골프 선수들의 모자와 경기복은 각종 로고로 빼곡하다. 모자 앞면은 메인 스폰서의 자리이고 모자 옆과 깃, 가슴 부분 등에는 서브 스폰서의 로고가 들어간다. 기업들은 이렇게 선수를 후원하며 많게는 연간 10억원 이상을 지불하기도 한다. 스폰서 입장에서 선수의 역할은 기업 로고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면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공로로 인센티브도 준다. 지난해 골프존이 발간한 골프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프로골프 투어의 스폰서 시장 규모는 약 2,05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선수 마케팅’의 길이 꽉 막혔다. 지난해 12월 2020시즌을 시작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3월부터 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는 새 시즌의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대부분이 연간 계약금을 이미 100% 지급했거나 일부 지급한 상태인 스폰서 기업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업계에서는 투어 재개 시점을 빨라야 5월로 보고 있는 만큼 그때까지는 대회를 통한 선수 마케팅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 스폰서 기업들은 제2·제3의 선수 마케팅 채널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 대기업의 골프마케팅 담당자는 9일 “대회 경비를 지원해준다는 차원으로 계약금을 지급한 것인데 대회 자체가 없으니 난감한 상황”이라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선수 마케팅 방안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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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계약과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스폰서 기업 쪽에서 계약과 관련해 걱정 섞인 문의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선수 쪽도 본의 아니게 미안한 입장인 만큼 선수 인지도를 활용한 양질의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안에서 스폰서 로고를 적극 노출하는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폰서 기업들 중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용품업계다. 투어 휴식기에도 대다수 선수들은 클럽 피팅 등의 목적으로 종종 용품사를 직접 방문하기 때문에 이때 원포인트 레슨 등의 영상을 간단히 촬영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외국에 머무는 선수들의 영상도 간단한 수준의 클럽 소개 등은 얼마든지 받아볼 수 있다. 선수의 목소리를 빌려 광고 내레이션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의류와 골프화 등을 후원하는 한 업체는 아예 선수 측에 협조문을 보내 개인 소셜미디어에 신제품 관련 영상을 올리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선수들도 기업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 노력하는 분위기다. 골프장에 연습 라운드를 가거나 연습장에서 샷 훈련을 할 때도 반드시 메인 스폰서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서브 스폰서 로고가 보이는 의류 등을 갖춰 입는다. 최근 전문업체와 손잡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골프여제’ 박인비도 영상에서 스폰서 기업들의 로고와 후원 용품업체의 클럽을 자연스럽게 노출한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도 경기 때 쓰는 모자와 경기복을 착용하고 연습장을 찾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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