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현빈이 어느새 ‘장겨울 선생’으로 더 익숙해져버렸다.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에서 유연석(안정원)을 짝사랑하는 능청스런 연기까지,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신현빈이 보여주는 외과 레지던트 3년차 장겨울의 매력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극 초반에는 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소생할 확률이 낮다. 가망이 없다. 심폐소생술을 했으면 살았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무신경한 모습으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후 모두가 기피하는 환자 다리에 붙은 엄청난 숫자의 구더기를 맨손으로 떼어내면서 반전 감동을 선사했다.
‘장겨울’이라는 캐릭터의 변주곡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정원 앞에서는 속내를 감추지만 이익준(조정석) 교수 등 주변 의사들에겐 “저 어떻게 생각한대요?”라고 묻는가 하면 “안정원의 취미생활이 궁금하다”고 불도저 같이 직진하기도 한다.
지난 9일 ‘슬기로운 의사생활’ 5회에서는 아동 학대범을 잡기 위해 맨발의 추격전도 펼쳤다. 신발을 벗어던진 채 범인을 쫓는 장겨울의 모습은 전설의 마라토너 ‘아베베’를 떠올리게 해 ‘율제 병원 장베베’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이렇듯 시청자들에게 똑 부러지는 의사이자 프로 짝사랑러 ‘장겨울’로 다가온 배우 신현빈의 필모그래피는 더욱 놀랍다. 신현빈은 2010년 영화 ‘방가? 방가!’에서 ‘방가’의 마음을 훔치는 욕쟁이 미스 베트남 ‘장미’로 데뷔했다. ‘장겨울 선생’의 하얗고 깔끔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베트남인 ‘장미’와 매치가 쉽지 않다.
이후 2011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2017년 영화 ‘변산’에서 다시 한 번 눈도장을 찍었다. 신현빈이 맡은 ‘미경’은 변산의 팜므파탈 역으로 주인공 학수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을 하던 인물이다. 두 편의 영화지만 확실히 다른 ‘장미’와 ‘미경’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줬다.
변산 이후에도 신현빈의 변신은 계속된다. 드라마 ‘무사 백동수’, 자백’,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클로젯’에 이어 최근 정우성, 전도연 등 굵직한 배우들과 함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지푸라기라도)에 출연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려다 수렁에 빠져드는 ‘지푸라기라도’의 ‘미란’과 ‘슬기로운 의사생활’ ‘장겨울 선생’의 갭을 생각해보면 그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신현빈이라는 배우가 이제와 조명 받게 됐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한예종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신현빈이 ‘장겨울’로 드디어 따뜻한 ‘봄’을 맞았다. 그의 ‘긴 겨울’이 끝나가는 것이 돋아나는 봄꽃만큼 반갑기도 하다. ‘슬의생’으로 주목받는 신현빈을 보며 떠오르는 말은 한가지뿐이다. 역시 인생은 ‘낭중지추’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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