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만 명→160만 명, 890억 달러→190억 달러. 1945년과 1947년 미국의 병력과 국방예산 규모다. 병력은 10분의 1로, 예산은 5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당연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까. 문제는 경기 침체 가능성. 제대군인원호법(G.I.Bill)을 만들어 전선에서 돌아오는 장병들을 대거 대학에 편입학시켰으나 방산기업들의 매출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군사 케인즈주의, 즉 병력과 군수물자 생산을 늘리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었다.
미국의 매파 관리들이 주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950년 4월 14일 국방비를 4배가량 늘리자는 내용의 비밀 보고서(NSC-68)를 만들었다. 58쪽에 이르는 보고서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소련의 위협. ‘광신적인 믿음 아래 세계 정복을 획책하는 소련’을 막는 길은 국방비 증액뿐이라는 논리를 담았다. 1949년 8월 말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중국 공산화와 1949년 영국 파운드화 위기로 인한 유럽의 경제난도 달갑지 않은 변수로 떠올랐다. 자칫 유럽과 일본이 생존을 위해 소련, 중국과 경제 교류를 늘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NSC-68 승인을 위해 소련이 전 세계를 동시에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고 부풀렸다. 정작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승인을 망설였다. 소련은 신형 전략폭격기도 없고 미국이 200발 넘게 보유한 원자폭탄도 5발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대통령은 오히려 국방비 동결 또는 감축을 고려하고 있었다. 사장될 것 같았던 NSC-68은 북한이 남침하면서 되살아났다. 미국 매파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 데 뺨 맞은 격이다. 평시 같으면 어림도 없을 국방비 4배 증액과 군수물자 7배 증산 목표가 어렵지 않게 이뤄졌다.
아서 맥아더 원수가 한국전쟁 도중 해임된 이유도 이 문서로 설명이 가능하다. 대소 전력 우위를 최우선목표로 삼은 트루먼은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야기할 수 있는 중공에 대한 폭격을 주장하는 맥아더를 놔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해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이유는 NSC-68이 극비 문서였기 때문. 1975년 기밀에서 풀렸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문제작 ‘한국전쟁의 기원’(1985)도 이 문서가 기밀에서 해제된 후 나왔다. NSC-68은 과거형이 아니다. 소련이 해체됐음에도 미국의 국방비는 올라만 간다. NSC-68은 미국이 전쟁을 치르거나 준비해야만 굴러가는 국가로 가는 이정표였던 셈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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