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등 여권이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두면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인 ‘친노동정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노동계에서는 “약속을 저버린다면 엄중한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노동계는 여당과 현 정부에 총선 승리 청구서를 들이밀면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이번에 국정 장악력을 높인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노동정책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초기 주 52시간 근로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으로 소상공인의 생활고를 부채질하고 중소기업의 생산 차질 우려를 증폭시켰던 이른바 ‘선한 의도의 역설’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만에 날아온 ‘총선 청구서’=16일 한국노총은 ‘노동존중 공약 이행과 정의로운 사회 전환을 기대한다’는 제목의 총선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국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여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준 것은 대통령의 약속과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며 곧 민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것”이라며 “여당이 노동존중가치 공약 등 약속을 저버린다면 노동자들로부터 엄중한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총선 전 한국노총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고위급 정책협약을 맺고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주요 내용은 △5인 미만 사업체 종사 근로자의 권리 보장(근로기준법 등 적용) △1년 미만 근속근로자의 퇴직급여 보장 △플랫폼종사자·특수고용종사자 노조 할 권리 보장(노조법 2조 개정) 등이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7일 66명의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 후보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전 한국노총 위원장, 우원식 전 을지로위원장, 한정애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등 51명이 당선됐다.
◇친노동정책, 선한 의도의 역설=민주당이 지난달 16일 발표한 총선 공약은 문 대통령 공약에 한국노총과의 협약을 얹은 모양새다. ILO 핵심협약 비준, 특수고용·플랫폼종사자 고용보험 적용 확대, 사용자에 의한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 횟수 제한 등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봤듯이 정책 의도와 정반대로 기업 투자 위축과 고용사정 악화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주 52시간제가 급속한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인쇄·정보기술(IT) 등 중소기업들은 원청기업의 요구에 따라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한 의도에서 행한 정책이 역설적 결과로 다가온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중소 영세자영업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총선 이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비정규직 관련 규제를 밀어붙인다면 재계는 아예 고용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직접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해서는 곤란하다”며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국회, 노동시장 변화에 집중하라”=문재인 정부 초반에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로 노사 간 극심한 갈등이 초래됐듯이 후반기에는 국회가 먼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와중에 재계를 중심으로 파열음이 나오면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국회가 동원되고 노사는 반발해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는 모양새가 일반적이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ILO 핵심협약 비준 모두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이념과 공약에 연연하기보다 ‘포스트 코로나’ 대응과 노동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노사정위 상임위원)는 “ILO 협약을 비준하더라도 실제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며 “‘압도적 다수를 가졌으니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아닌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노동계의 임금 동결과 재계의 총 고용 유지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노동 쟁점을 부각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ILO 핵심협약 비준, 특수고용종사자 고용보험 적용 등 기존에 논의됐던 부분만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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