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2인자’였던 황교안 전 대표가 당을 지휘하면서부터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이번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참패한 가장 큰 이유로 종로에서 패배한 후 사퇴를 선언한 황 전 대표를 지목했다. 탄핵된 박근혜 정부에서 2인자 역할을 한 황 전 대표가 보수세력을 이끌다 보니 당이 인적쇄신과는 거리를 뒀고 철 지난 색깔론을 반복하는 태극기부대 등을 감싸안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는 황 전 대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17년 대선 이후 내리 3연패를 하는 동안 보수세력은 유권자 지형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못하다는 점을 냉철하게 읽지 못했고 변화보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문재인 심판’ 등 선동적 구호만을 외쳤다. 전문가들은 총선 민심이 통합당에 해체에 준하는 개혁을 요구한 것이라며 극단주의 배제, 인재 수혈, 보수 정체성 확립 등을 주문했다.
◇보수 우위 지형 무너져…코로나 선거도 野 참패 한몫=전문가들은 통합당이 참패한 구조적 이유로 선거 지형 변화를 꼽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념 지형이 변화했다”며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수가 다수였는데 탄핵 이후 치러진 선거를 보면 이념적 지형이 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권력의 중심이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아울러 정부의 적극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로 유권자가 정권안정론을 택한 것도 보수 참패의 외부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전례 없는 국가방역 시스템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효율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며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능력을 굉장히 좋게 평가했고 자연스럽게 선거 이슈에서 경제나 고용 문제가 배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막말 논란 등에 대한 민감하고 섬세하지 못한 대처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장 소장은 “황 전 대표에게서 n번방 막말 논란이 시작됐고 이후 차명진 후보의 막말 논란을 수습하느라 선거운동 기간 13일을 허비했다”며 “국민들에게 ‘우리 당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든지 ‘우리 정책은 이것’이라고 말씀드리기보다 막말 정리와 해명·수습에 몰두했다”고 꼬집었다.
◇극단주의 배격하고 경제에서 실용·중도노선 가야=외부 변수나 기술적인 선거 대응보다 태극기부대를 옹호하고 보수 유권자들만 바라보는 통합당의 ‘수구’ 기질이 선거 패배의 근본적인 이유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보수 극단의 세력과는 결별하고 외형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 소장은 “차명진을 제명해야 하는데 그를 옹호하는 태극기 세력이 당에 항의하자 못한 것이고 그것이 총선 패배의 빌미가 됐다”며 “그런 세력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통합당이 중도·실용노선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시장주의의 기본은 지키되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보다는 보다 실용적인 주장을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재난소득과 관련해서도 지급은 하되 기준을 정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등 유연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보수의 핵심가치는 안정적인 중산층 확대에 있다”며 “중산층 확대를 위해서라도 이들을 위한 중도적인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차재권 부경대 교수도 “장기적으로 통합당은 중도우파로 변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탕 삼탕 인물로 비대위 체제 때는 대선도 필패…새 인물 찾아야=새로운 인물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장 소장은 “혹 홍준표 전 대표가 다시 당 대표를 하고 김태호 의원이 당 대표를 한다면 국민들이 저 당은 안 되는 당이라고 할 것”이라며 “치열한 논쟁을 통해 새로운 지도체제를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차 교수는 “이번 총선의 민심은 보수세력에 탄핵 이후에도 ‘반성 없이 딴짓만 했다’고 질책한 것”이라며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도 다음 대선까지 2년밖에 남지 않아 쉽지 않다. 남은 기간 보수 이데올로기 정립, 새로운 인물 발굴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형윤·진동영·김혜린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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