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는 안모(40.남)씨는 지난 주 7살 난 외동딸의 생일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장난감 전문 매장 <토이저러스>에 방문했다. 손녀의 생일 선물을 직접 사주고 싶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3세대가 모두 함께 이동하게 된 것이다. 20만원을 훌쩍 넘는 커다란 로보트 모형 앞에 멈춰 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손녀의 모습에 정모(82.여)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지갑을 꺼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일을 맞은 딸의 발에는 명품 브랜드 L사의 신발이 신겨져 있다. 외조부모님과 어머니로부터는 두둑한 용돈까지 받는다. 저녁에는 유료 키즈 채널을 마음껏 시청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제는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식스 포켓> 현상이다.
식스 포켓은 아이의 부모와 외가,친가 조부모 총 6명의 어른이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 속의 돈을 푸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생과 고령화 사태는 이 흐름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집안에 귀한 아이가 단 한 명 존재하고 맞벌이 부모와 풍부한 자금력을 지닌 양가 조부모는 오래 생존하게 될 때, 그들은 유일해서 더 애틋해진 아이에게 물심양면의 지원과 사랑을 쏟아붓는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의 현실화다. 어린 아이들의 주머니가 점점 더 도톰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식스 포켓 시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익 창출의 기회다. 극심한 경제 불황 속에 대부분의 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엔젤 비즈니스>라고도 불리는 <키즈 산업>만은 공황의 영향권 밖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영유아에서 초등학생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키즈 산업은 2002년 8조에서 시작하여 2017년 40조에 이르는 엄청난 시장 규모를 형성할 때까지 탄탄한 성장세를 그려왔다. 키즈 산업 관련 종목의 주가 또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성장률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식스 포켓 현상의 부상이 그 든든한 지원군이다.
하나뿐인 아이를 위해 어른들의 주머니가 활짝 열릴수록 아이들을 위한 산업은 진화한다. 전통적인 유통과 교육 산업을 넘어 이제는 새롭게 뻗어나가고 있는 분야에도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키즈 디지털 컨텐츠와 놀이문화 산업이 그 좋은 예다. 우리는 여기서 훌륭한 사업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키즈 산업의 주요 타겟층인 영유아 세대는 아날로그와 접촉해본 경험이 전무한 모모(More Mobile)세대다.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났고 성장했다. 디지털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당연한 일상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컨텐츠를 향유하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 옹알이를 시작하듯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부모 세대인 식스 포켓족 또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다. 두 세대의 디지털 친화력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부모는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상에서 키즈 컨텐츠를 발견하고 구매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며 아이들은 작은 화면 속에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에서 눈을 떼기 어려워진다.
<핑크퐁>과 <몬스터 슈퍼 리그>의 브랜드로 더 잘 알려진 컨텐츠 생산 기업 <스마트스터디>의 동요 <아기 상어>는 키즈 컨텐츠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기 상어는 출시된 이후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빌보드 차트에까지 입성했다. 미국에서조차 예외적인 일이었다. 2분에 불과한 이 경쾌한 동요는 그 외에도 역대 유튜브 최다 조회수 2위를 기록했으며, 파생 상품들은 다양한 국가의 어린이들을 모두 사로잡는 동시에 다채로운 분야의 산업에 접목되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유아들의 경우 전 세계 부모들이 원하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이 용이했다고 스마트스터디의 공동 책임자 이승규 이사는 설명한다.
아기 상어는 키즈 컨텐츠가 거대한 글로벌 트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산업임을 증명했다. 스마트스터디의 매출은 2018년 400억을 기록했고, 스마트스터디의 주주사인 삼성출판사의 주가는 2018년에서 2019년까지 91.9% 치솟았으며 핑크퐁의 완구 제작사인 <오로라>의 주가 또한 2019년 전년 대비 42.7% 상승했다. 같은 시기 많은 산업들이 하향세를 걸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의미 있는 수치다.
모니터 밖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즐거움을 찾는 식스 포켓족의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 아동 입장료가 평균 12000원에서 18000원을 웃돌고 동행한 부모 또한 시가보다 비싼 음식이나 이용권을 의무 지불해야만 하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키즈 카페는 그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1천여 곳에 불과하던 전국의 키즈 카페는 2018년 2300곳까지 2배 이상 늘어났다. 좋지 않은 공기질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다채로운 경험을 아이에게 선사하고 싶은 식스 포켓족의 희망은 키즈 카페라는 새로운 놀이문화를 발전시켰다. 같이 시간을 보낼 또래를 만나기 어려워진 외동 아이들에게, 키즈 카페는 함께 어울리고 뛰어놀 친구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교의 장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키즈 카페는 365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며 신기한 놀이 기구를 갖췄고 맛있는 간식까지 넘쳐나는 곳이다. 아이의 놀이 학습을 지도하는 선생님까지 있는 곳도 있다. 아이들의 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다.
키즈 카페는 또한 부모 세대의 커뮤니티 및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되어 그 인기가 높다. 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존재하는 공간에 부모들은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며 육아 정보를 공유한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부모는 한 걸음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지친 육아에 한 템포 쉬어갈 공간이 조성되었다. 실제로 <엠브레인트트렌트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이 키즈 카페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양육의 피로를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키즈 카페는 서비스 이용자인 아이들과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어른 세대를 동시에 공략해야 하는 키즈 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전문가들은 키즈 산업을 ‘불황 없는 산업’이라고 칭한다. 아이를 위한 정성과 사랑은 부모의 본능과도 같기에 이러한 본능 자체가 탄탄한 소비자층이 되어 산업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최근 어려워진 가계 상황에도 불구하고 엔젤 계수(가계 총 지출에서 아이들의 물품이나 용돈,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는 오히려 증가했다. 나홀로 호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일본에 사회가 식스 포켓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아니 그 전부터 키즈 산업은 자신의 지속 가능성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불안정한 경제 속에서도 자신만의 사업을 구축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시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우리는 식스 포켓족과 그들의 <골드 키즈>, 즉 집안의 하나뿐인 공주님과 왕자님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른 연령대와 달리 영유아층과 보호자가 원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다. 건강한 재미와 자연스러운 학습, 건전한 도구, 그리고 안전한 환경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상품과 서비스라면 그들은 관대하게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스마트 시대가 도래했고 ‘잘 노는 것’이 ‘공부 잘 하는 것’만큼이나 아이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는 시점이다. 이 두 재료를 혼합하여 꼬마 손님들을 위한 새로운 달콤함을 개발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이와 부모라는 관계, 그리고 이들 간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가 존재하는 한 키즈 산업은 그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블루 오션이 있을까.
/유한주 썸데이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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