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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니먼 마커스

1926년 말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백화점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우수 고객들에게 감사 표시를 할 흥미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평범한 카드 대신 16쪽으로 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매장에서 쉽사리 접하지 못했던 상품들을 소책자에 담자 고객들은 반색했다. 매년 말 이 우편물이 배달되면 훔쳐 가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1950년대 책자는 더 진화했다. 비행기와 잠수함 등 초고가의 희귀한 구매목록을 담은 ‘판타지 기프트’도 책자에 넣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고급 백화점 니먼 마커스의 상징인 ‘크리스마스 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1907년 허버트 마커스가 여동생 부부와 함께 만든 니먼 마커스는 상류층을 타깃으로 설립됐다. 석유로 돈을 번 텍사스인들이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자 매장을 화려하게 꾸민 뒤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고급 의류를 팔았다. 상품들은 나오는 즉시 품절이 됐다. 1920년대 들어서는 혁신적인 마케팅을 시도한다. 주간 패션쇼를 처음 개최했고 매장 내 미술 전시회도 열었다. 1938년에는 ‘니먼 마커스 패션 어워드’를 만들었는데 이 상은 ‘패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가 있다. 코코 샤넬과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이 상을 받았다. “고객이 물건을 잘 샀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잘 판매한 것이 아니다”라는 창업주의 말은 유통가에서 보석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창업주 2세인 스탠리 마커스가 죽은 뒤 백화점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2005년 사모펀드인 워버그 핀커스에 팔린 데 이어 2013년에 미국 자산운용사인 아레스로 넘어갔다. 럭셔리 중고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 지분을 인수하는 등 변화에 대응했지만 험로가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니먼 마커스에 치명상을 안겼다.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낸 것이다. 조만간 빚을 못 갚으면 파산보호(법정관리) 신청을 해야 한다. 113년 역사의 백화점까지 코로나19의 제물이 된 상황이 안타깝다. 니먼 마커스가 위기의 수렁에서 극적으로 벗어나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다시 서길 기원한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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