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불러온 ‘트럼프 경기침체’의 고통을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 연방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경기부양수표에 트럼프의 이름을 인쇄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렇듯 아무 데나 그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앞에서 등장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다소나마’다. 1,200달러짜리 수표는 최근 의회를 통과한 경제 부양 패키지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조항이 담긴 ‘코로나바이러스 지원·구제 및 경제안전에 관한 법’(CARES Act)은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턱없이 미흡하다.
4주 새 2,200만 명의 일자리 손실을 가져 온 경제적 참사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에 시행되는 2조 달러 규모의 부양책 외에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회피하려면 3차 구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팬데믹의 기세가 꺾인다 해도 경제적 어려움은 한동안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3차 부양책을 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잠잠하던 반정부 이론가들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는 의학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유도된 혼수 상태에 빠져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접촉을 제한함으로써 경제의 모든 부분을 의도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이처럼 인위적 혼수상태에 빠진 경제를 지금 당장 흔들어 깨워서는 안 된다. 최소한 신규감염률을 급격히 떨어뜨리거나 진단검사를 극적으로 늘려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더라도 즉각 대응에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춘 후 경제를 재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우리는 아직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특히 진단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경제봉쇄를 풀기까지는 앞으로 수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경제 재개가 늦어지면 근로자들과 병원, 주·시 정부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지방정부를 마지막으로 언급했다고 해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강도가 근로자들이나 병원보다 낮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주 정부는 연방정부와 달리 의무적으로 예산의 수지균형을 맞춰야 한다. 자금 조달을 위해 지방채를 함부로 발행할 수 없는 이유다.
연방정부는 경제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울 수 있고 또 도와야 한다. 현재 집행 중인 부양책은 이 같은 역할을 어느 정도 적절히 해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CARES 법에 따라 코로나19 실업수당 지급액이 적정수준으로 늘어났고, 밀려드는 수요에 쩔쩔매던 주 정부의 담당 기관은 연방정부의 자금지원에 힘입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소기업을 위한 특별대출 자금은 이미 바닥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 정부와 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은 극적인 세수손실과 폭발적인 경비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정국 또한 파산 직전의 상태다.
이들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또 하나의 부양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을 어디서 조달해야 하나. 간단하다. 빌리면 된다.
지금 미국에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잉여자금이 넘쳐난다. 인플레이션를 감안한 연방채권의 이자율은 현재 -0.56%다. 투자자들이 이자까지 지급해가며 정부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대규모 경기부양에 필요한 자금조달 문제를 고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추가 부양 법안은 아직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부양법안 처리 지연은 모두 공화당 책임이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2,500억 달러 규모의 중소기업 추가 대출 지원법안을 추진 중이고 민주당 역시 큰 틀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전국 병원과 주 및 시 정부를 위한 상당액의 지원금을 공화당 주도의 부양안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 의원은 차후 추가 조치가 필요할 때 민주당 측의 주장을 검토하겠다며 반대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제안을 이번 부양안에 포함시킬 수 없는 현실적 이유는 전혀 없다.
단언하건대, 현재 상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재 공화당은 주와 시 정부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기업들에 지원금을 몰아주려 한다. 심각한 재정난에 빠진 지방 정부들이 어쩔 수 없이 공공 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는 이른바 ‘야수 굶기기’ 전략을 이어가려는 속셈이다. 야수 굶기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공화당이 줄기차게 구사해온 전략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공화당의 속 보이는 전략에 강경하게 맞서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 매코넬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트럼프는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아 우정국에 대한 지원 가능성까지 배제했다.
반정부 이론가들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적 재난에 우리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들의 방해공작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 축소를 불러오면서 대중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다.
재정난에 봉착한 지방 정부들이 교사들과 소방관들을 대거 해고하고 우정국까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는 등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수 백만 개의 불필요한 일자리 손실을 목격할 것이다. 대책 없이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이 지출을 줄이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사라진 일자리 중 상당수는 팬데믹이 물러간 뒤에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바닥을 친 경기가 급속히 반등하는 이른바 V자 형 경제회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가슴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위로 삼을 만한 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까지 스스로 망치게 되리라는 사실, 그것이 그나마 우리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팬데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대중의 기억에서 제거하기 위해 신속한 경기회복에 ‘올인’하려 한다. 그러나 빠른 경기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주범은 트럼프와 상원에 진을 친 그의 우군들이다 . . .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