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변을 둘러싼 온갖 설(說)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혈관 수술설부터 위중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도피설까지 나왔지만 이에 대해 북한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김 위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도 김 위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북한 내부에 말 못할 ‘사정’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정찰자산을 보유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위중설을 최초로 보도한 미 CNN방송의 보도에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부정확하다”고 평가해 여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부정확하다는 표현을 쓴 점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 내부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 위원장의 신상에 대한 정보는 사실 북한 내부에서도 극소수의 사람 만이 파악할 수 있는 만큼 논란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야 논란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 하지만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 파문은 북한 정권의 향후 변화에 따른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과제도 던져줬습니다. 실제 외교가에서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가정한 북한 붕괴 시나리오까지 지라시(정보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지만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 등 김 위원장의 의 건강상태는 언제든 악회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평가인 만큼 그의 유고시 전개될 북한 내부의 권력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앞으로 김 위원장 유고시 북한 권력구도에 대해 크게 3가지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1 ‘김씨 일족의 권력승계’
김 위원장 사후 그의 일족이 권력을 유지하는 시나리오입니다. 3대를 이어온 김 씨 일가의 핏줄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은 북한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후계구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인물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입니다. 김 위원장은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가를 통치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북한 내부의 영향력과 김 위원장과의 신뢰도를 고려할 때 형인 김정철보다는 동생인 김 제1부부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과 1989년 9월부터 2000년 가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11년간 함께 생활해 두터운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은 최근 정치국 후보위원에 복귀하며 대남 및 대미 메시지까지 발신하며 북한 내부에서 명실상부한 실세로 자리 잡았다는 해석까지 나옵니다.
북한이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 유고에 대비해 수년간 후계 권력 승계 작업을 진행해 온 점을 볼 때 지난 일본 언론의 김 제1부부장의 권력 세습 준비 보도는 예사롭지 않은 대목입니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하기 훨씬 전인 1980년 6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이미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 임명하며 일찌감치 권력 승계 작업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도 2008년 쓰러진 뒤 3년 동안 김 위원장의 권력 승계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30대로 젊은 나이지만 김 위원장이 고도비만으로 인해 고혈압과 심장병, 혈관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려 언제든 사망할 수 있는 만큼 북한 내부 권력층이 긴급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김 제1부부장 이외에도 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와 숙부인 김평일도 있지만 이들은 이미 김씨 일가의 내부 권력다툼에서 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사회 특유의 가부장적 문화와 김 제1부부장의 권력 기반이 취약한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의 삼촌인 김평일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탈북민 출신 태구민(본명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자는 지난 23일 김정은 유고 상황과 관련 “김여정 체제로 가겠지만, 현 체제를 떠받드는 60, 70대 세력의 눈에 김여정(32)은 완전히 애송이”라면서 “다른 옵션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김평일의 존재”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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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2 ‘군부의 과두정치 체제’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표면상으로는 최고지도자의 유일 영도 체제지만 사실상 집단 지도체제로 보고 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정치체제와 관련 “북한 정치체제는 200여명의 인재들이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노동당, 정무국, 군부 등 핵심관계는 지위세습을 위해 정권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 사후 권력승계 준비작업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군부 과두정치 체제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과거 사회주의국가에서 강력한 권력을 유지한 최고지도자가 사망했을 경우 군부 과두정치 체제로 이어졌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 일단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북한은 김여정이 형식적으로 앞에 나오지만 집단 지도체제가 될 가능성 있다”며 “백두혈통을 앞세운 뒤 배후그룹이 북한을 이끄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그 후 내부의 알력다툼이 발생하면 김씨 일가가 권력투쟁에서 버틸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불확실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시나리오 3 ‘할지론’
가능성은 낮지만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 간의 패권전쟁에 요동쳤던 과거 역사가 있는 만큼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코로나 19라는 초대형 악재는 잠잠했던 미중관계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코로나 19로 미국과 중국은 한 배를 타고 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중의 최전선에 위치한 곳이 한반도인 만큼 중국은 패권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를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실제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북한 급변사태시 지역평화 명분을 앞세워 북한을 흡수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해석합니다. 중국이 북한에 들어올 경우 동북아의 패권을 지켜야 하는 미국의 개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과거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09년 9월 9일 북한 붕괴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미국 국방부가 공개한 국방정책 4개년 보고서(QDR)의 북한 붕괴 시나리오에는 북한 지역을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분할 통제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중국은 분명한 이(異) 민족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강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외교전문가인 에반스 르비어는 “외부적으로 북중 관계는 긴밀해 보이지만 북한은 뿌리 깊은 반중국 정서가 자리하고 있어 북한 고위층과 주민들이 중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 개입설을 반박했습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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