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현행범을 체포하면서 임의제출 받은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박모(36)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설명했다.
박씨는 2018년 5월 경기 고양시 한 지하철 출구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전화로 자신의 앞에 서 있던 A씨 치마 속을 여러 차례 찍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앞서 같은 해 3월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것을 비롯해 총 11회에 걸쳐 피해자들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1심에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박씨에 대해 “마지막 범행 발각 후 경찰관들이 도착했을 때도 저항했으며, 2004년과 2012년 각각 강간치상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한 휴대전화 속 사진과 영상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이 부분을 무죄로 본 게 쟁점이 됐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박세황·고준홍 판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48시간 이내 사후 영장을 발부 받지 못했으므로 휴대전화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설령 피체포자의 임의제출 진술이 있다거나 사후적으로 임의제출서가 제출됐더라도 구속영장 내지 추가 압수·수색 영장 청구 권한이 있는 우월적 지위의 수사기관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을 수긍할 수 없다고 봤다. 현행범 체포현장이나 범죄 현장에서 임의제출 받은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며, 이 경우 수사기관은 별도 사후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법리에 따르면 현행범 체포현장에서는 임의로 제출하는 물건이라도 압수할 수 없고, 사후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박씨 측이 휴대전화 제출의 임의성 등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는데도 2심 재판부가 직권으로 임의성을 부정해 무죄로 본 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이를 판단하기 전에 추가 증거조사를 하거나 검사에게 임의성에 대한 증명을 촉구하는 등 심리를 더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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