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경기도 한 모텔에서 남자친구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0년을 선고 받은 이른바 ‘부천 링거 사망 사건’의 주인공 32세 간호조무사 A씨가 남자친구를 죽인 전말이 드러났다.
A씨는 법정에서 지속적으로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됐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동반 자살 시도’가 아니라 남자친구를 향한 집착과 오해가 부른 계획적 살인이었음이 밝혀졌다.
A씨는 2016년 5월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서울 한 노래방에서 B(2018년 사망 당시 30세)씨를 처음 만났다. 각자 사귀는 연인이 있는데도 둘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호감을 키웠다. 이후 B씨는 이듬해 초 그동안 만나던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A씨는 3년 전부터 함께 살던 남자가 있음에도 B씨와 연애를 시작했다. 데이트 비용은 A씨가 거의 부담했다. 당시 간호조무사 일을 관둬 직업이 없던 A씨는 그의 동거남과 함께 대출받은 돈으로 데이트 비용을 충당했다.
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남자친구를 향한 A씨의 집착도 커졌다. 남자친구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아내 수시로 들여다봤고, 심지어 B씨의 은행 공인인증서도 직접 관리하며 지출 내역을 확인했다.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자신의 마음에 들게 바꾸려 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A씨가 B씨를 오해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귄지 1년이 훌쩍 지난 2018년 10월 A씨는 남자친구의 계좌에서 여자 이름으로 보이는 다른 계좌로 13만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발견했다. 며칠 뒤 재차 13만원이 또 다른 계좌로 빠져나가자 A씨의 의심이 시작됐다.
작은 의심은 더 큰 집착을 불렀고, 집착은 확신이 됐다. A씨는 휴대전화에서 ‘13만원 계좌이체’, ‘남친이 13만원 계좌이체’, ‘남친의 오피출입 사실을 알게 되’, ‘남친이 성매매’, ‘유흥탐정’ 등의 단어를 4시간 넘게 검색했다. 과거에도 B씨를 의심해 ‘피곤해하는 남친’, ‘애정도 테스트’,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는 남친’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B씨의 계좌에서 두 차례 빠져나간 13만원으로 시작된 의심은 성매매하는 남자친구를 상상하는 집착으로 이어졌고,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한 남자친구의 배신을 확신하자 그는 격분했다.
결국 A씨는 2018년 10월 19일 지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소염진통제 디클로페낙 앰플과 주사기에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병원에서 갖고 온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수액 주머니에 담았다. 다음날 오후 10시 30분께 경기도 부천 한 모텔에서 B씨와 만난 그는 퇴근 후 지친 남자친구에게 “피로해소제를 맞자”며 프로포폴을 투약해 수면 마취를 했다.
숨진 B씨를 119에 처음 신고한 이도 A씨였다. 사건 당시 B씨와 모텔에 함께 있던 A씨도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치료 가능한 수준의 농도로 확인됐다. A씨는 이를 두고 “남자친구의 부탁을 받고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는데 혼자 살았다”고 주장했다. 자신 역시 링거를 맞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주삿바늘이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가 B씨에게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하고 자신에게는 치료농도 이하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판단하고 위계승낙살인죄 등을 적용해 불구속 입건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보강 수사를 벌인 검찰은 A씨와 B씨가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살인죄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달 8일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며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살해한 내용임에도 피고인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하고 있다. 피고인은 수사기관 조사 때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피고인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게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후 24일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임해지 부장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동반 자살을 하기로 약속했다는 증거로는 피고인 진술이 유일한데 그 진술이 빈약할 뿐 아니라 신빙성도 매우 낮다”며 “피고인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 없이 살인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유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돼 참회하고 유족에게 속죄하는 게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의 누나는 법정 내 방청석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되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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