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돼 1년여 만에 다시 광주법정에 선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은 27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그는 잘 들리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부인 이순자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직업·거주지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진행했다. 생년월일과 직업 등을 물을 때는 잘 안 들린다며 이씨에게서 한 번 더 설명을 들었지만 주소에 대해서는 맞는다고 답변했다.
인정신문을 마친 후부터는 눈을 감고 있다가 재판장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눈을 뜨며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전씨는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더라면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잠을 이겨내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고(故) 조비오 신부의 5·18 기간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영상·사진 자료를 제시할 때는 눈을 뜨고 유심히 화면을 바라보기도 했으나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재판장은 전씨 측에 고령인 관계로 집중력이 떨어지면 휴정을 요청하라고 했고 재판이 1시간 20분 이상 이어지자 변호인 측의 요청으로 잠시 휴정 후 재개하기도 했다. 전씨는 이날 법원으로 출석할 때도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건물로 들어섰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조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인정신문을 위해 지난해 한차례 재판에 출석한 후 그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았으나 재판장이 바뀌면서 공판 절차를 갱신하게 됐다.
/광주=김선덕기자 s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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