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다 보니 빚 문제가 떠오릅니다. 물론 지금은 무조건 돈을 풀어야 할 때입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10년, 20년 뒤는 어떨까요. 당장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얘기만은 아닙니다.
저금리가 빚 문제 덜어준다…버냉키 “자산매입 한계 사실상 없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 얘기부터 해보죠.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올해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만 3조7,000억달러(약 4,512조원)로 추정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7.9%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인데요. 지난해 79%였던 연방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101%를 거쳐 내년에 108%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적인 셧다운(폐쇄)에 세수는 줄어들고 경기침체에 소비와 투자도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부채를 우려하고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건 다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미국이 2·4분기에 최대 -50%(전분기 대비 연환산 기준) 역성장을 점치고 있습니다.
국가도 빚이 늘어나면 투자자들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걱정합니다. 이 경우 투자자들이 해당 국가채권을 사지 않고 이는 채권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부채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상환요구가 몰릴 수 있고 이자비용이 급등하기 때문이죠.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0.6%대 초반에 불과합니다. 사상 최저 수준이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낮춘 데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채권가격 상승은 금리 하락)가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지난 3월 CBO가 2025년 GDP 대비 부채비율 89%였을 때 이자비용이 GDP의 2%라고 봤는데 지금은 107%라고 해도 저금리에 이자비용이 똑같이 2%라고 합니다. GDP 대비 237%에 달하는 정부 부채비율에도 일본이 버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중요한 건 당분간 저금리가 이어질 거라는 겁니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2023년 후반부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다른 국가들도 최소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부담은 없습니다. 달콤한 저금리의 세상이 계속되는 것이죠.
특히 연준은 미 국채를 계속 사들일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연준이 현재 6조달러대의 보유자산(대차대조표)를 갖고 있습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현재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미국 GDP의 30%나 이보다 덜 한 수준인데 일본은 80~90%”라며 “이를 고려하면 더 커질 수 있으며 연준에 한계는 사실상 없다”고 했습니다.
저유가에 인플레이션 부담 적어…美, 국채금리 상한제 카드도
다만, 고려할 게 있습니다. 바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인데요.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물가 안정입니다(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경기와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쪽으로 주 임무가 바뀐 듯하긴 합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인상해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여야 합니다.
코로나19 직전까지도 낮은 물가상승률에 되레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연준만 해도 2%인 인플레이션 타깃을 맞추지 못해 경기논쟁이 많았고 금리동결과 인하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활동이 그만큼 활발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코로나19로 변수가 생겼습니다. 중국 공장들이 셧다운되면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이 문제가 됐습니다.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도 화두이구요. 미국도 중국에서 생산된 의약물품을 들여오지 못해 한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리쇼어링은 일자리에는 도움이 되지만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셧다운으로 억눌려 있던 가계와 기업들이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그동안 눌려왔던 수요가 한 번에 폭발해 가격이 뛸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무너진 육류공급망과 기업과 상점의 손실을 고려하면 이들이 가격을 대폭 올릴 가능성도 있지요. 물가상승 압력요인들입니다.
하지만 유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게 이 같은 우려를 상쇄하고 있습니다. 앞서 5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이 배럴당 -37달러까지 간 데 이어 6월물도 12달러 수준입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20달러 안팎에 불과하죠. 이렇다 보니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전보다 덜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금 당장은 유가가 폭락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걱정은 없다”고 했는데요.
월가에서는 물가가 치솟아도 최후의 방법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국채금리 상한제입니다. WSJ은 1942년 초반 연준이 국채금리에 상한선을 뒀고 여기에서 빠져 나오는데 9년이 걸렸다는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지금도 전시니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면요.
“한국은 미국처럼 사치 못 부려”…10~20년 뒤의 부채 고민해야
미국 상황을 설명한 것은 국가부채를 얘기할 때 알아둬야 할 요소와 논쟁거리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감수하면서 돈을 풀고 있다는 것과 부채가 늘면 국채 금리 상승과 그에 따른 부담 증가가 있지만 지금은 저금리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 인플레이션 문제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라는 점 말이죠.
이제 우리나라를 살펴보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 국가 채무비율이 GDP 대비 41.3~41.4%를 넘어설 것이라며 상당 규모의 적자국채를 찍어야 하는 3차 추경까지 하면 44%나 그 아래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채무비율 40%대 초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110%)의 절반도 안 된다며 대규모 재정집행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채무비율이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앞서 언급한 미국이 아닙니다. 모두가 달려드는 안전자산(미 국채)이 없고 기축통화국도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이고 잠재적인 통일비용이 있습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2009년까지 총 1조3,000억유로(약 1,722조원)가 옛 동독에 투입됐습니다. 지금은 채무비율이 낮지만 고령화와 복지예산이 겹치면 나랏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단단하고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지만 위기에 취약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나 이번 코로나19에도 유동성을 원하는 해외투자자들의 현금인출기(ATM)로 전락했습니다. 지난 2월 말 39.3%였던 코스피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은 24일 기준 36.83%(468조1,744억원)까지 떨어졌는데요. 위기 때마다 환율이 폭등해 “언제 연준이 통화스와프를 해주나”하고 목을 빼고 기다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관료들이 미국보다 금리가 0.75%포인트 이상 높으면 국내 투자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며 전전긍긍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한국은행은 늘 연준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고 외국인은 미 국채를 원하기 때문에 미국은 명백한 채무위기에도 강력한 방어력을 갖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은 그런 사치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령화와 통일, 반복되는 위기를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비율이 더 낮아야만 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재정으로 일어섰고 코로나19도 재정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지금까지 옛 기획예산처와 기재부 예산실이 곳간을 지켜왔습니다. 위기 때는 곳간을 활짝 열어야 하지만 곳간을 다시 채울 방안도 찾아야 합니다. 10~20년 뒤를 위한 중장기 부채관리방안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걱정이 없다는 미국조차 중장기적으로는 부채를 고민합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미국에서) 고령화와 그에 따른 의료비용 증가는 계속 나오는 이슈로 10년에서 20년 뒤에는 연장정부 부채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진 않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훗날 위기 때 쓸 돈이 없어 맥없이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대규모 증세나 IMF 때의 끔찍한 구조조정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