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국회에서 29일 의결해 다음달 중순까지 1인당 25만원 정도를 준다는 일정이다. 그동안 재난지원금에 대한 여론은 찬성 쪽이 늘어나고 국민의 관심이 커지면서 지급 대상도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결론이 난 지금 정부와 여당은 물론 합의해준 야당에까지 잘했다는 반응이 주류일 것으로 본다. 그래서 걱정이다.
애초 나라 살림의 책임을 맡은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큰 중하위 소득층에만 지원하려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대로 피해가 심한 계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당정 협의 과정에서 70%의 국민으로, 여야 정치를 통해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결정적인 이유는 국가가 주는 돈인데 왜 나는 빠져야 하느냐는 국민 정서가, 그 돈이 바로 내가 낼 세금이라는 이성의 깨침을 눌렀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의 상당 부분을 추가 세금이 아니라 기존 예산을 절약해 만든다고 하지만 그래서 생길 돈이 있다면 빚을 줄여야 마땅하다. 올해 나랏빚이 100조원이 더 는다. 재난지원금으로 수십만원이 담긴 카드를 받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올해 느는 나랏빚은 1인당 200만원, 4인 가구 가장이라면 800만원이다. 나라에서 주는 선불카드가 실은 한 해 1,000만원 가깝게 쌓여가는 내 카드빚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기막힌 일이 아닌가. 특히 앞으로 세금으로 그 빚을 갚아나가야 할 세대에게는.
국회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늘리면서 기부를 장려해 그 돈을 고용보험에 쓰기로 했다. 지난달 1차 추경 때는 국회가 고용보험기금을 삭감했는데, 이는 임기응변적인 예산조정 항목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고용보험은 사회안전망의 중추다. 기부금보다 확실한 예산으로 보전해야 맞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700만명에 대해 보호를 확대하고 실업급여 수준 및 지급기간도 늘리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재난지원금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대선 주자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먼저 제안·추진하면서 각 도·시·군이 잇달아 시행했다. 그 결과 경기도 화성시 같은 곳은 1인당 30만원까지 주는 반면 개인에 대한 현금성 지원이 거의 없는 곳도 있다. 지급 대상도 경기도는 모든 도민 대상이고 바로 옆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에만 지급한다. 최근 이사한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정부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추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 한다. 지자체는 자체 계획을 시행하느라 돈을 다 써 국가 재난지원금의 지방 부담분을 못 낸다고 버티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인기가 치솟은 사람들은 정부 시책이나 지역 재정 여건과 상관없이 돈을 많이 주는 지자체장들이다. 여당 출신 남양주 시장은 처음에 지역 사정상 전면 지원이 어렵다는 소신을 밝혔지만 주민들의 압력에 못 견뎌 방침을 바꿨다. 정치가 이치에 앞섬을 보여준 사례다.
재난지원금의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문제는 지역 화폐의 경쟁적 사용이다. 원래 지역 화폐는 두레나 품앗이 전통처럼 공동체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자체장 업적의 하나로 쓰였다. 그 연속선에서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로 지급하는 곳이 많은데 경기회복의 확산을 막음은 물론 좁은 국토 내에서 시장을 단절하는 부작용이 커질까 우려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경제 충격이나 중요한 선택의 과제가 발생할 때 재난지원금 같은 의사결정이나 시행의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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