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행이 17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생사와 무관하게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공식 후계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9일 ‘북한 당 정치국 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을 이은 공식 후계자로 역할을 확대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김 위원장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여정의 지위와 역할을 ‘당중앙(후계자)’ 역할까지 확대해 ‘백두혈통’의 통치권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2020년 김여정의 활동은 사실상 당의 유일지도체제를 책임진 ‘당중앙’의 역할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것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역할뿐만 아니라 향후 백두혈통의 공식 후계자로서 지위와 역할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법조사처는 다만 “정치국 후보위원에 머물러 있는 김여정의 지위와 역할을 고려할 때 (후계자 지명 과정이) 김 위원장 복귀 후 곧바로 이뤄지기 보다는 한 차례 공식적인 절차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후계 라인에 섰다는 평가는 해외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28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사라질 경우 후계 구도에 들어설 수 있는 인물로 김 제1부부장과 김 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 숙부인 김평일 등을 들며 이 가운데 김 제1부부장을 첫손에 꼽았다. BBC는 “김여정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딸이었고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서도 “가부장적인 나라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 군대를 운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도 김여정이 어떻게 후계구도에 섰는지를 자세히 보도했다.
입법조사처 예상대로 김여정이 조만간 김정은의 후계자로 지목되면 이는 초유의 조치가 될 전망이다. 최고지도자가 고작 30대에, 직계비속도 아닌 형제를 후계구도로 공식 인정한 사례가 지금껏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8년생인 김여정은 이제 갓 32살이 된 ‘여성’이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60대 중반이 넘어서야 후계자를 공식 지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이 17일째 잠행을 하는 가운데 북한 권력서열 3위인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12일 만에 관영매체에 얼굴을 내비쳤다. 노동신문은 29일 “박봉주 동지가 김정숙평양방직공장과 평양시안의 상업봉사 단위 현지 료해(파악)했다”고 보도했다. 박 부위원장의 공개활동 보도는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에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이 공개된 지 12일만이다. 박봉주는 김정은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공식적인 권력 서열 3위로 평가된다. 김 제1부부장 등 ‘김일성 일족’은 제외한 순서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