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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석유 대란과 국가이기주의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원유패권 싸움 겹쳐 시장질서 흔들

에너지정책 탈원전등 경직성 벗고

경제 친화 합리적 기조로 변화해야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지난 4월은 150년 석유산업 역사상 가장 극심한 유가변동을 겪은 시기다. 지난달 20일 뉴욕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가 멈춰 서면서 석유 수요가 급감했고 그 결과 누구도 실물 석유를 인수하지 않으려 들면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나타난 것이다. 유가는 지난달 25일에도 24.6%나 폭락했다.

유가 급락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요 급감과 공급 과잉의 지속 그리고 과잉 생산에 따른 저장용량 부족이라는 3가지 요인이 결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특히 수요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사회 봉쇄와 접촉 금지로 올 들어 약 30%나 줄었다. 그러나 공급은 기술적 요인들과 산유국의 재정적 필요성 등으로 금방 줄어들 수 없는 구조다. 대폭락의 불씨가 됐던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 불발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국가이기주의까지 가세했다. 땅속에 있는 원유는 보관하는 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산유국들이 지금껏 장기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생산 시점과 생산량을 결정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석유는 한번 고갈되면 추가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회비용 차원에서 초과이윤이 보장됐다. 이러한 관행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활동 등으로 성공해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셰일 석유가 부상하면서 이러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유 패권주의 국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셰일 석유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권력 유지를 위해 세계 2·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유가 하락을 방치해 세계 1위 미국 석유산업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셰일 석유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경제성이 없다. 미국에서 연일 석유산업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이 다르다. 최근 유가 하락폭은 주식 등 자본시장이나 식량 등 다른 국제 원자재보다 두 배가량 크다. 국제 유가 폭락이 계속된다면 산유국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리자 중동과 러시아는 이달부터 하루 생산량을 20% 감축해 배럴당 970만 배럴까지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에 크게 부족하다. 미국 등 여타 산유국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국에서는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이미 200만 배럴 이상의 생산감축이 진행되고 있다. 쿠웨이트·노르웨이 등 여타 산유국 감산도 예견된다. 이달 들어 석유 저장문제가 완화되고 세계 각국의 점진적 경제봉쇄 해제가 이뤄진다면 수요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WTI가 20달러, 브렌트유는 30달러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회복했다. 물론 당분간 공급 초과의 완전 해소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도 시장기능 회복 추세는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된다면 유가가 올해 안에 40달러, 내년 상반기에는 60달러 수준까지 회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석유 대란은 앞으로 석유산업 구조의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디지털 경제의 주력 에너지인 청정전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행보에 나서고 탈원전 정책을 포함해 이념에 경직된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경제 친화적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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