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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블랙스완

1877년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초연된 ‘백조의 호수’에는 백조뿐 아니라 흑조(블랙스완)도 나온다. 흑조 오딜은 지크프리트 왕자가 사랑하는 백조 오데트의 모습으로 변해 한껏 우아한 춤으로 그의 사랑을 훔친다. 오딜의 유혹이 강할수록 오데트의 순결이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선악이라는 개념이 서로 상대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양에서 백조가 주로 흠 없는 순결과 신비를 상징한 것은 아마도 색깔이 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흑조는 그 반대의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관념상의 새일 뿐이었다. 1790년 영국의 박물학자인 존 레이섬이 호주에서 흑조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하자 서양인들은 깜짝 놀랐다.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뒤 흑조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일이 실제 일어났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미국의 투자분석가인 나심 탈레브는 2007년 ‘블랙스완’이라는 책에서 흑조처럼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며 증시 대폭락과 금융위기를 예측했다. 예측은 맞았고 그는 ‘월가의 현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금융위기에서 보듯 예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면 파급 효과는 매우 크다. 이후 9·11테러, 일본 대지진, 그리고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블랙스완은 경제뿐 아니라 전쟁·지진·전염병 같은 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코로나19는 박쥐를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져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이 때문에 야생동물을 먹지 못하도록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저장성 푸장현의 한 남성이 인근 호수에서 관상용으로 길러지던 블랙스완을 잡아먹는 일이 발생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환구시보가 보도했다. 블랙스완은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 보호조류로도 등록돼 있다. 현지에서는 제2·제3의 코로나19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블랙스완을 잡아먹어 블랙스완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작 두려운 것은 탈레브의 지적처럼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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