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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믿는 경제학,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가

■[책꽂이-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2019년 노벨경제학 수상자 부부 최신작

이민·조세·무역 관련 기존 경제학에 반기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 부부가 인도 어린이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UPI연합뉴스




지난 해 노벨 경제학상은 여러 면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 명의 공동 수상자 중 두 명이 부부였다는 점, 그 중 부인은 역대 두 번째 여성이자 최연소 수상자였다는 점, 그리고 노벨위원회가 이들의 연구 주제인 ‘빈곤 퇴치’에 크게 주목했다는 점이 모두 관심의 대상이었다.

부부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59)·에스테르 뒤플로(47) 교수가 몸 담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측은 지난해 10월 수상자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기자들에게 ‘배너지와 그의 부인’ 대신 ‘뒤플로와 그의 남편’으로 불러 달라고 각별하게 당부해 또 한 번 눈길을 끌기도 했다. 수상자의 면면과 연구 주제 그리고 학계가 수상자를 대하는 방식 모두 기존 주류 경제학 안팎을 옭아매고 있던 낡은 고정 관념을 허물어트리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배너지 교수와 뒤플로 교수의 최신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신간을 통해 범지구적 빈곤과 불평등 개선 촉구를 위해 다시 한 번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들었다. 저자들은 기존 경제학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당면한 시대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학자들이 시야를 넓히고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다. 시장의 기능과 효율성, 공정성은 맹신하면서도 인간의 자존감과 행동심리, 공동체의 역할, 국가나 지역의 고유 특성 등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선배 경제학자들의 접근법은 ‘나쁜 경제학’이라고까지 단언한다.

책은 크게 이주, 무역, 조세, 정부의 역할 등을 다룬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현재 정치 담론의 핵심에 놓여 있는 주제들이다. 저자들은 이와 관련된 정치적 결정 배경에 ‘나쁜 경제학’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15일 멕시코 북서부 바하칼리포르니아 주의 국경 도시인 티후아나에서 사람들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세워진 벽에 색칠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이민자는 기존 주민의 일자리를 빼앗나

책의 첫 번째 주제인 이민·이주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미국 사회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어 유럽은 물론 국경을 두고 민족 간, 국가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여러 개발도상국에서도 첨예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이민 반대론자들은 일자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저임금 노동자인 외국인들이 기존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1980년 쿠바인들이 미국에 몰려갔을 당시 해당 지역 임금과 고용률 변화를 살펴본 ‘마리엘 보트리프트’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한다. 쿠바인의 대량 유입은 기존 주민의 임금을 끌어내리지도, 실업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또 저자들은 기존 경제학의 노동 수요·공급 논리로만 따지면 인도의 농촌-도시 이주, 미국의 쇠락-신흥 지역 이주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생활 근거지를 옮길 때 단순히 임금만 따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들은 빈곤과 불평등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이민과 이주를 활성화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역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이익인가

저자들은 자유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득이 된다는 현대 경제학의 오랜 통념에도 물음표를 던진다. 무역 개방이 모든 나라의 국민총생산(GNP)를 올리고 가난한 나라의 불평등을 줄인다지만 국가가 아닌 지역, 집단 등 더 작은 단위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는 각국의 개별적인 국내 정책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 간’ 비교 만으로 무역의 영향을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불평등 완화를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책은 조세 문제도 다룬다. 세금을 낮춰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는 그릇됐다고 지적한다. 세율을 낮추면 일에 대한 사람의 의욕이 커지고, 반대로 세율을 높이면 부자가 일을 덜 하게 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빈곤층이 복지 혜택 때문에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은 단순히 경제적 인센티브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접근법이 시대 문제 해결의 유일한 열쇠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학계 안팎에서 다양한 반론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고,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복잡성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는 지 솔직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부연한다.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두기에, 경제학은 너무 중요하다.” 2만7,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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