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직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그러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지역에서 거의 발생하지 않고 해외 입국자의 검역에서 대부분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정부에서는 지난 3월22일부터 실시해온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달 6일부터 생활 방역으로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45일 만에 일어난 방역 대책의 전환이다.
생활 방역의 전환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환자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처럼 방역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어 어디선가 조용한 전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4월 말, 5월 초의 황금연휴 기간에 많은 시민들이 집을 벗어나 전국 곳곳의 휴양지를 찾아 그 귀추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갑작스러운 슈퍼 전파자의 존재와 폭발적인 지역 감염의 가능성을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 방역의 전환도 나름의 기준을 통해 결정됐다. 즉 하루 신규 환자 50명 이하, 감염 경로 불명 환자 비율 5% 이하, 방역망 내 통제 여부 등이 제시됐다. 물론 코로나19 확진자의 발생 추이가 이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약간 못 미치는 상황이므로 방역 대책의 전환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의문의 사유실험을 제기할 수 있다. 생활 방역의 전환에 찬성한다면 확진자의 폭증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확진자의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에 찬성한다면 생활 방역의 전환은 조용한 전파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두 물음에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백신도 개발되지 않았고 유효한 치료제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엉거주춤한 채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제한적인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폭발적 감염의 가능성을 인정하되 과도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그 가능성을 대비하는 촘촘한 매뉴얼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이 겪었던 상황을 검토할 만하다. 당시 초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와 동쪽의 제(齊)나라 등과 천하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굴원은 초나라가 국정을 일신하고 제나라와 손잡고서 진나라를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정은 진나라가 제안한 군사적 양보를 받아들이고 제나라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굴원을 아끼는 사람이 그에게 충고했다. “뜨거운 국을 먹다 덴 사람은 나물도 후후 불면서 먹거늘 그대는 왜 뜻을 바꾸지 않은가(징어갱자이취제혜·懲於羹者而吹□兮, 하불변차지지야·何不變此志之也).” 이로부터 한 번 실패하면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징갱취제(懲羹吹□)의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뜨거운 국을 먹다 입안이 덴 경험이 있다면 그릇에 담긴 음식만 봐도 “앗 뜨거워”하며 피하게 된다는 말이다. 징갱취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사람이 뜻하지 않은 실패나 어려움을 당하고서 움츠러드는 심리적 기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징갱취제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실패를 예사로 보지 말라는 경고를 건질 수는 있지만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를 놓칠 수 있다. 사람은 뜻하지 않은 실패를 겪고서 다시는 그런 유사한 상황에 놓이기를 피하려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럴 수만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한 번의 실패가 주는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다시 겪을 상황을 대비할 지혜를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방역 대책을 전환하면 그간 준수해온 감염 예방의 생활 수칙을 포기할까 봐 생활 방역이라는 말도 생활 속 거리두기로 고쳐 쓰고 있다. 이는 징갱취제가 연상시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것이 주는 지혜를 선택했던 굴원의 선택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데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간의 경험이 주는 지혜를 존중한다면 재발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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