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좋은 재료들을 그릇에 넣고 쓱쓱 비벼 크게 한입 물었는데 나물과 고기와 당근이 따로 논다. 고추장을 넣으면 나아질까 싶은데, 그 고추장부터 맛이 있는지 아닌지 종잡을 수가 없다.
‘더 킹:영원의 군주’의 전반부는 복잡하게 꼬여있는 세계관을 설명하고, 주인공의 ‘멋짐’을 설득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7화까지 방송된 현재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평행세계’라는 것은 익숙해졌으나,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도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는다.
▲만파식적
작품은 ‘만파식적’ 설화로부터 시작된다. 적을 내쫓고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는 오래된 피리를 두고 이림(이정진)은 ‘세상’이라 부른다. 그는 ‘천벌을 내리는 자’가 되고 싶다며 동생을 사인검으로 살해한다. “폐하께는 고작 역모이겠으나 더 큰 것을 얻고자 든 검”이라면서….
그는 만파식적의 비밀에 대해 “정확히는 두 개의 세상. 예상은 했지, 언젠가 내 조카님도 나처럼 전설과 마주치는 순간이 오리란걸”이라고 말한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만파식적을 나눠가진 이들이 결국 서로를 막기 위해 마주할 것이며, 그때가 클라이맥스라는 복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림이 ‘왜 황제를 죽이면서까지 만파식적을 손에 넣었으며 목적은 무엇인지’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작품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가장 큰 원인이다.
▲평행세계
대한제국의 황제 이곤(이민호)은 ‘이과형 황제’로 소개된다. 수학자들이 좋아한다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평행세계가 있다고 믿기에 대한민국의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다. 어린시절 선왕 시해사건을 겪으며 정태을(김고은)의 경찰 신분증을 얻게 된 그는 25년을 기다려 그녀를 만난다. 그에게는 정태을이 동화 속 시계토끼인 셈이다.
대한제국에는 정태을을 꼭 닮은 ‘루나’가 존재한다. 신분등록이 되지 않은 그는 각종 범죄를 일으키고 다니는 인물로, 각종 범죄로 붙잡혀 교도소에 갇혀도 금세 풀려난다. 그가 누구인지, 정태을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게될지, 한발 더 나아가 정태을이 과거를 찾아가 이곤을 구한 사건과 연관됐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상도 살인사건
대한민국의 정태을·강신재(김경남) 형사가 수사중인 ‘이상도 살인사건’은 모호한 점이 많다. 피해자의 USB 녹음 파일에서 대한제국에만 존재하는 지명과 인물 이름이 등장한다. 분명히 이림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 죽은 이상도가 대한제국과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난 가운데, 이 사건을 풀기 위해 이곤과 정태을이 본격적인 ‘공조수사’에 돌입했다. 복잡한 모든 사건의 ‘풀이’는 7회 후반부 등장한 이 공조수사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 대한제국
이야기의 큰 줄기가 여러 갈래인 만큼, 김은숙 작가는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심었다. 특히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차이, 황제와 평범한 사람의 신분 차에서 오는 괴리감을 많이 이용했다. 이곤이 ‘퀸연아’라고 적힌 김연아 광고판을 보며 “여긴 여왕이 통치하나보지”라든가 “자네 혹시 문과인가”라든가 양념치킨을 먹고 이런 맛은 처음이라든가….
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명대사 퍼레이드’도 나온다. 좀처럼 먹혀들지 않지만. 이곤의 “정태을 경위 내가 자네를 내 황후로 맞이하겠다. 방금 자네가 그 이유가 됐어. 이 세계에 내가 발이 묶일 이유”, “난 방금 자네에게 한 세상을 맡겼어”, “부르지 말라고 지은 이름이었는데 자네만 부르라고 지은 이름이었군” 등이 먹혀들던 시기는 “애기야 가자”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던 그 시기다.
▲PPL
제작비가 큰 드라마일수록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것이 간접광고(PPL)다. ‘사실상 모든 장면에서 등장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마다 산통을 깨버리면 만파식적이고 평행세계고 드라마가 끝나면 치킨집밖에 머리에 안 남는다.
회사원들의 노곤함과 술자리를 활용했던 ‘미생’, 김 작가의 전작 ‘미스터 션샤인’의 빵집 등 알지만 모른척 넘어가 줄 수 있는 PPL 활용법은 얼마든지 많다. 빵집, 배달 애플리케이션, 치킨, 슈퍼카, 국산차, 냉동 술안주, 아이스크림, 커피, 휴대폰, 홍삼…. 왜 평행세계의 문이 열리는지 몰라도 이곤이 반반치킨 좋아하는건 이제 시청자 모두가 알겠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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