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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행정가 박원순'에게 남겨진 숙제

이지성 사회부 차장





2011년 그가 처음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을 때 세간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전임 시장이 정치적 무리수를 던져 낙마하는 바람에 그저 운 좋게 선거에 이겼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평생을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일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서울을 이념과 진영이 대립하는 전쟁터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민선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올라 퇴임을 2년 앞둔 박원순 시장의 얘기다.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박 시장의 리더십이 주목받은 건 지난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였다. 박근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박 시장은 확진자 동선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조기 진화에 나섰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경고장을 날리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됐지만 박 시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서울시의 성과는 눈부시다. 미국 뉴욕시의 사망자가 1만4,000명에 육박하는 반면 서울시는 2명에 불과하다는 게 단적인 예다.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와 협조가 일등공신이지만 박 시장의 선제적인 조치와 대응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서울시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은 1월24일이다. 박 시장은 즉시 참모들을 소집해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절대적으로 낫다는 그의 소신이 빛을 발했다. 입국금지 국가 확대, 대학 개학 연기, 감염병 경보 상향, 해외입국자 전수조사 등 서울시 정책이 그대로 정부 지침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일반명사가 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처음 제안한 것도 박 시장이다.



10년에 이르는 박 시장의 재임기간 공과를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임금· 복지·노동·일자리 문제 등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소통과 연대를 강조했지만 정작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그가 위기상황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물음표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시민이 백신’이라며 동분서주하는 박 시장이 한번 더 서울의 사령탑을 맡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자체장은 3선 연임만 가능해 박 시장은 2년 뒤 시청을 떠나야 한다. 행정가 박원순은 이제 정치인 박원순을 놓고 고민이 많을 것이다.

연간 예산 40조원을 주무르는 서울시장은 소통령으로 불리며 늘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혀왔다. 박 시장에게 주어진 숙제는 코로나19 사태로 달라진 서울의 위상에 걸맞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점하는 일이다. 서울시민의 응원을 받은 행정가 박원순이 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 박원순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앞으로 2년의 성적표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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