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의장이 장기침체 가능성을 들고 나오면서 경기전망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게 됐습니다. 월가에서는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V자’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최소 수년 간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장기불황(공황·depression) 초입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어떤 침체보다 더 심각…코로나에 저소득층 40%가 실직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은 강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가 2달 전에 퍼졌는데 2,000만명 이상이 실직했다”며 “경기둔화 속도와 폭이 유례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떤 침체보다 심각하다”며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장기적인 대가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며 “코로나는 깊고 긴 침체를 남길 수 있으며 수년 간 경제의 생산성과 가계와 기업의 지불 능력에 지속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전 연준 부의장)가 “연준의 통화정책은 2~3년 정도를 내다보는데 왜 장기적인 부분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수위가 높았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했는데요. 파월 의장은 “14일 나올 연준 조사를 보면 연소득 4만달러(약 4,900만원) 이하 미국 가구 가운데 40%가 2월 이후 실직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트럼프 정부와 IB들은 ‘V자 반등’을 점치고 있습니다.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3·4분기부터는 다시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울한 전망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V자 회복전망을 하던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이 나이키 모양의 회복을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서울경제와 인터뷰한 미 씽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미국 경제가 공황에 진입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3개월이나 6개월 내 회복이 아닌 ‘공황’임을 또렷이 밝혔는데요. 브레머 회장은 “경기침체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나 전세계 성장률 2% 미만을 뜻하고 공황은 명확한 정의가 없지만 그 정도와 깊이가 더 심한 상태”라며 “코로나바이러스가 2~3년 간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유는 코로나 백신이 대량 생산돼 국제적으로 분배되고 모든 이들이 면역체계를 갖출 때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실제 공황은 일반적으로 경기침체가 최소 수년 동안 지속하는 상황인데요. 경기침체와 달리 정해진 정의가 없기에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2개월 이상 두 자릿 수 실업률이 지속하는 상황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생산성·투자↓ 모두가 백신 맞을 때까지 지속…테퍼 “증시 역사상 두 번째로 과대평가”
브레머 회장의 진단은 최소 수년 간 지속되는 장기침체를 뜻합니다. 그러고 보면 앞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미국경제가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5년이 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데요.
미국 내 대표적인 경제전문가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 겸 SS이코노믹스 대표의 분석은 깊이 새길만 합니다. 그는 이날 “코로나19와 관련해 이것이 자연재해와 같이 V자 모양의 빠른 회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코로나19는 백신이 나와 3억명 이상의 미국인들에게 투여될 때까지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주변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브레머 회장의 진단과 같은데요.
그는 “(경제를 재개해도) 평상시처럼 복귀가 어려울 것”이라며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식당과 극장은 손님을 절반도 못 채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영업을 해서 손님을 받더라도 거리를 둬야 하기 때문에 매출과 수익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죠. 손 교수는 “폐쇄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을 것이며 대중교통과 엘리베이터, 스포츠 행사의 제약을 고려할 때 경제활동 재개는 느리고 점진적일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대규모 도산이 우려되며 기업들은 투자를 하기보다 대차대조표와 유동성을 강화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미국이 완전고용 수준이었던 올 초 고용시장 상황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10년 가까이 걸린다는 게 손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는 “2007~9년 불황 이후 불황기에 잃어버린 일자리를 모두 되찾는 데 6년이 넘게 걸렸다”며 “이번 불경기는 더 길어지고 회복은 더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시 버블론이 고개를 듭니다. 이날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데이비드 테퍼가 “지금의 주식시장은 1999년과 2000년 이후 두 번째로 과대평가돼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파월 의장의 발언과 겹쳐 증시 하락에 결정타가 됐습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연말에 S&P 500이 3,000선까지 가겠지만 3개월 내 20% 가까이 하락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죠.
‘V자 회복’은 트럼프와 기업들의 바람…결국 추가로 돈 풀어야
이제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럼 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비롯한 경제당국자들은 ‘V자 반등’을 거론하면서 3·4분기부터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하고 내년에는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하는지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허풍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신뢰가 생명인데 경제 당국자들의 말에 믿음이 사라지면 이후에는 구두개입이나 추가 정책을 내놓을 때 약발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패닉이 올 수도 있죠. 월가 출신인 므누신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회복이 느릴 수 있다”면서도 “연말부터는 반등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얘기하는 경제성장률은 실제 전망에 정부의 정책 의지가 약간 더해진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11월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평소보다 자신의 바람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브레머 회장의 시각도 그렇습니다. 그는 “11월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주가를 높이 띄우려는 최고경영자(CEO)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현실은 우리가 공황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결국 관건은 돈을 얼마나 더 푸느냐가 될 것 같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장기적인 경제적 손실을 피하고 강한 경기회복을 도울 수 있다면 그럴 가치가 있다”며 “이는 세제와 예산 권한을 행사하도록 선출된 대표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전날 민주당이 3조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공화당이 이를 보지도 않고 거부한 바 있는데요. 민주당 안은 지방정부와 주정부 지원에 약 1조달러를 쓰고 개인에게 1,200달러씩 추가로 지급하는 게 뼈대인데, 공화당은 선거를 앞두고 지방정부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부채 급증을 걱정하면서 기존 부양책의 효과를 보자는 입장이지만 추가 부양책을 아예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인프라 투자와 급여세 인하(트럼프 선호)를 내세우고 있죠. 정치적으로 지출 항목과 규모를 어떻게 협의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연준의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도 100%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블라인더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가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본다”며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데) 마이너스로 조금 더 내리는 게 혁명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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