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와의 대담에 나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발언 수위는 예상보다 높았다. 시장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을 부인하고 다시 한번 최근의 경제상황을 짚어줄 것으로 봤지만 파월 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경기침체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어조로 운을 뗐다.
파월 의장은 “코로나19가 장기적인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깊고 긴 침체를 남길 수 있으며, 수년 동안 경제의 생산성과 가계 및 기업의 지불 능력에 지속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연준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가 “연준의 통화정책은 2~3년을 보고 하는데 왜 장기적인 부분까지 거론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바람과 달리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가계 피해가 극심하다. 14일 나올 연준의 조사에 따르면 연소득 4만달러(약 4,900만원) 이하 미국 가구 가운데 40%가 2월 이후 실직 상태다. 미국 전역에서 지난달에만 2,050만명이 실직 상태로 내몰렸다. 미국은 소비가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데 ‘고용 축소→소비 감소→기업 도산→일자리 위축’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실직자의 80%가 일시해고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경제활동이 재개되더라도 기업 매출이 크게 오르지 않아 이중 상당수는 완전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식당과 극장은 손님을 절반도 못 채울 것”이라며 “폐쇄는 하루아침에 끝날 수 없고 대중교통과 엘리베이터 이용, 스포츠 행사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어 경제활동 재개는 느리고 점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을 재개해도 매출과 수익이 예전 같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이 경우 중소기업의 대규모 도산으로 이어져 고용시장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백신이 나와도 대량생산을 거쳐 국제적으로 배분된 후 각국이 면역체계를 갖추는 데 최소 2~3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달보다 1.3% 하락했는데, 이는 2009년 12월 이후 최대폭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도 0.8% 떨어져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소비와 투자가 더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와 의회의 추가 부양책이 현재로서는 장기침체의 현실화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민주당에서 지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을 포함해 3조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내놓았는데 공화당은 검토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기존 부양책의 효과를 당분간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추가 부양책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은 주정부 지원 대신 인프라 투자나 급여세(payroll tax) 철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지원 항목과 규모에서 차이가 있는 셈인데, 결국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파월 의장이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요구한 것도 양당 간 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파월 의장은 의회가 더 많은 부양책을 내놓지 않으면 길고 고통스러운 경기하강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공화당원들도 어느 시점에서는 또 다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침체 우려의 목소리를 낸 연준도 추가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높다. 파월 의장은 “마지막 장이 아닐 수 있다”며 추가 대책을 시사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일 현재 6조7,200억달러인 연준의 자산매입 규모는 올해 말 9조2,900억달러로 38.2%나 불어난 뒤 오는 2022년 말에는 11조2,70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2007~2009년) 당시의 두 배 이상이라고 WSJ는 보도했다.
제로 수준인 지금의 기준금리를 더 떨어뜨리는 것에 파월 의장은 선을 긋고 있지만 월가와 경제계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카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블라인더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가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본다”고 전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