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착각해 춥게 입었던 그날, 집에 돌아오니 미열이 있는 듯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이 곤두섰다.
불안함에 아이 선물로 받은 체온계를 찾아 양쪽 귀를 번갈아 재본 뒤에야 ‘휴’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 ‘확진’이라는 아찔한 상상을 해봤다. 회사는 초유의 재택근무 체제에 들어가고 지난 이틀간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직장 모두 일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아이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순간은 차라리 공포다. 다른 학부모들의 원성이 벌써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동네를 떠야 할 것만 같다.
감염이 의심스러울 때는 차라리 모른 체 나을 때까지 끝까지 버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매일 마주하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폐 수술 경험과 고혈압, 모두 고위험군이다. 이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삶에 파고든 지 넉 달이 지났다. 최근 인천의 한 과외교사가 역학조사 과정에서 신분을 숨긴 탓에 다수의 2차, 3차 감염으로 번진 것처럼 그간 자신의 신분 노출이나 파장을 우려해 드러내기를 꺼리거나 거짓 증언을 한 사례는 꾸준히 나왔고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막상 내가 걸렸을 상황을 가정하니 이들이 악의를 가졌거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용기가 좀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뒤가 될지 모를 코로나19 종식까지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최근 사례처럼 종교·취향·정체성 등이 소수 집단에 속하고 이를 스스로 밝히기 꺼려지는 경우라면 진단검사를 받는다는 자체가 엄청난 장벽이 될 것이다. 비난보다 격려, 배척보다 연대가 코로나19 방역에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국이 수차례 말한 대로 우리의 적은 코로나19라는 잔인한 바이러스지 서로가 아니다.
마스크와 진단검사·의료체계 등 ‘K방역’은 이미 세계 일류로 평가받는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감싸고 보듬어주는, 다시 한 번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가 아닐까.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서 말이다.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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