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하게 되는 게 소원이라니. 하지만 보리의 사정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이 이해된다. 농인 가족 속에서 혼자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리는 ‘나만 다르다’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괴로워한다. 식사 중에 수어로 대화하며 박장대소하는 엄마, 아빠, 동생이 너무 즐거워 보여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기도 한다. 장애 가족 안에서 유일한 ‘비장애’로 유대감을 갖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다.
장애를 결여, 비주류, 핸디캡 등으로 여기는 사회 통념에 과감히 도전한 이 영화는 강원도 출신 김진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미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코로나 19 등 여러 이유로 지각 개봉하지만 “개봉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는 김 감독은 최근 열린 사전 시사회 및 기자 간담회에서 보리의 소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 소원이라고 했다. 김 감독 역시 보리처럼 어머니가 농인, 자신은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이다. 보리가 강릉 단오제에 놀러 갔다가 잠시 한 눈을 파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졌지만 안내 방송을 이용할 수 없었던 일이나 옷 가게에서 엄마 뒤에서 수군거리는 점원들 때문에 화가 났던 일 모두 김 감독의 실제 경험이다.
"들리든 안 들리든 모두 똑같아" |
보리가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유대감에 대한 욕구 역시 장애·비장애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어떤 관계 또는 특정 집단 안에서 ‘왜 나만 다를까’ 라는 고민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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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장애·비장애의 ‘다름’ 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한글 자막이 있는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농인들이 수어와 함께 사용하는 홈사인(가족 간의 몸짓 언어)도 영화에서 사용했다.
따뜻하고 소박한 가족이 이야기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녹아들어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주문진 해안도로, 강릉 서낭당과 장덕리 은행나무 등 보리가 성장해 가는 강릉 주문진의 정겨운 풍경은 김 감독이 자라난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영화 스틸컷 제공=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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