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코로나 전(BC)’과 ‘코로나 후(AC)’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정부 행정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행정 분야 전문가로 인사혁신처장을 지낸 김판석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를 15일 만나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과 행정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김 전 처장은 “앞으로 코로나19처럼 예상하지 못하고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자주 등장할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려면 정부·기업·전문가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는 미래를 예측해 과감히 혁신하는 탐험가 리더십과 다양한 재료를 균형 있게 활용하는 요리사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이태원 클럽발(發) 감염자가 늘고 있어 걱정이지만 전반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다. 미국·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현저히 적고, 외국에서도 한국의 성공적 대응 사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보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한국이 대응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는가.
△메르스 등 과거 재난으로부터 배운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감염병 예방·통제를 위해서는 관련 정부 기관은 물론 감염병 전문가·학계·기업 등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 경험이 국내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1월27일에 서울역회의 개최를 가능하게 했다. 이날 서울역에 마련된 회의실에 질병관리본부 공무원, 진단검사의학회 임원, 감염병 전문가, 제약회사 대표 등이 모여 신속하게 대응방안을 논의했던 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 대응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위기를 관리할 때 논리의 대립 현상이 때때로 발생할 수 있다. 감염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되면서 경각심이 옅어진데다 얼어붙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경제 논리가 강해졌다. 결국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정책을 전환하자마자 이태원 클럽발 감염자가 대거 발생했다. 국민들의 피로감 증가와 경각심 부족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경제 논리가 방역 논리를 앞서며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신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시 한번 방역에 고삐를 죄어 감염이 확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그동안 ‘작은 정부’라는 논리로 위축돼 있었던 국가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 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필수 조직과 인력, 행정 서비스를 축소시켜왔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가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맞춤복을 너무 정교하게 입으면 상황이 변화하거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입을 수 없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정부 기관에서도 조직·인력·장비 등에서 약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위기가 닥쳤을 때 조직이나 인력이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고 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는 어떤 리더십이 요구되는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세상은 변덕(Volatile), 불확실(Uncertain), 복잡(Complex), 모호(Ambiguous)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 ‘뷰카(VUCA)’, 즉 예측 불가능한 시대다. 이런 때에는 두 가지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선 탐험가와 같은 사고방식이다. 탐험가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과감히 혁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앞으로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 경우에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듯이 머뭇거리지 말고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탐험하는 과정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문제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고 때로는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셰프(요리사)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하다. 유능한 요리사는 맛뿐 아니라 사람들의 영양과 건강 등을 두루 생각한다. 다양한 재료를 쓰되 쏠림이 없이 균형 있게 활용한다. 요리에서는 특정 재료를 너무 적게 넣어도, 많이 넣어도 실패한다. 요즘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진정한 리더는 주어진 자원을 갖고 시대가 원하는 해답을 찾아내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정책소비자인 국민 입장에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행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능정보화 발전에 맞춰 공직 채용제도 전반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공직 분류에서 직무 종류와 성격이 비슷한 직류들을 모아놓으면 직렬이라고 하는데,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등과 가까운 현재의 직렬이 전산 직렬이다. 하지만 현재의 전산 직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능정보 업무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시대 변화에 맞게 세분화한 지능정보 직렬로 바꿔야 한다. 인사혁신처가 각 행정기관의 데이터 기반 행정을 담당할 공무원을 선발할 수 있는 데이터 직류를 신설하기 위한 법령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 외에 AI와 지능정보자원관리 직류 등을 지능정보 직렬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
-해외 행정의 디지털 전환 사례들을 소개한다면.
△영국은 이미 2011년에 총리실에 정부디지털서비스(GDS) 조직을 신설하고 디지털 혁신을 추진해왔다. 2017년에는 ‘디지털 전환 전략’도 발표했다. 특히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과 임금 및 선발 체계 등을 혁신하는 동시에 비(非)디지털 공직자들을 위한 기술교육 훈련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의 GDS를 참고해 디지털서비스 조직을 대통령실에 설치해 디지털 전환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조직의 초대 수장으로 마이클 디커슨 구글 엔지니어를 발탁했다.
-한국의 공직자들도 시대 변화에 맞게 역량을 키워야 할 텐데.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이 되려면 기업은 물론 정부 인력의 핵심 역량을 높여야 한다. 정부에는 개발자보다는 사업 방향성을 파악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민간에서 간과할 수 있는 데이터 보안 취약점에 대한 예방책 등을 마련하는 인력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무원 교육훈련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기존 정보화 교육을 빅데이터와 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핵심 기술 기반의 지능정보화 교육 혹은 디지털 전환 교육으로 개편해야 한다.
-공무원 인사평가제도의 변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행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코로나19와 같이 예상하지 못한 난제들에 부닥치는 경우가 더 빈번해질 것이다. 이에 대처하려면 개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관련 기관이나 이해당사자들이 협업을 통해 풀어나가는 게 중요해졌다. 정부-시장(기업)-시민사회(전문가) 등이 상호 협조하는 ‘협력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무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최근 정부가 직무수행 평가에 협업과 소통능력을 추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협력적 거버넌스의 예를 든다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중앙정부-지자체-감염병 전문가-진단검사의학회-진단키트 및 제약 회사 등이 함께 대책을 협의하며 방역활동을 한 것이 협력적 거버넌스의 대표적 사례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행정기관 혹은 담당 공무원 혼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관계기관·이해당사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함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정치행정 모델이다.
-시대 변화에 대응해 대학 교육도 바뀌어야 할 텐데.
△대학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기술 교육이 요구된다. 기존 컴퓨터공학 등의 교과과정 외에 데이터과학과 관련된 과목을 신설해 학부나 대학원에서 교육해야 한다. 여러 대학에서 현재 빅데이터와 AI 분야 학과를 신설하고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지만 유능한 교원 유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데 국내 대학의 경직된 연봉과 인사체계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연구소에 직을 두면서 교수로 강단에 서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겸직금지제 역시 걸림돌이다. 처우 개선책과 함께 겸직제도 개선 등의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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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고, 중앙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플로리다국제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 아메리칸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귀국해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로 국내 강단에 섰다. 연세대에서 정경대학장·정경대학원장을 지냈다. 아시아행정학회(AAPA)·세계행정학회(IIAS) 회장, 유엔 행정전문가위원회(CEPA)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으로 일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인사혁신처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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