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프랑스 행정부와 공공기관 등에 이례적인 경고문이 날아들었다. 영어를 섞어 쓰는 프랑스어 표현인 ‘프랑글레(franglais)’가 프랑스어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며 관련법을 철저히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모든 정부 문서와 상업계약·광고 등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투봉법(1994년 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공직자의 올바른 언어 사용을 다그친 기관은 400년 가까이 프랑스어 지킴이를 자처해온 ‘아카데미프랑세즈’였다.
아카데미프랑세즈는 1635년 2월 루이 13세의 섭정 최고대신인 아르망 장 뒤 플레시 리슐리외 추기경에 의해 세워졌으며 프랑스어 표준화와 학술 진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당시 귀족과 문인들의 비공식 문예집단 모임인 ‘콩라르 서클’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에는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루이 13세는 월계관과 더불어 ‘영구불멸하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문장까지 하사했을 정도다. 프랑스대혁명 시절에는 유한계층의 모임이라며 폐지됐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시로 부활해 오늘날 프랑스의 최고 권위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나 비평가·역사가 등 40명의 종신회원으로 이뤄진 아카데미프랑세즈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프랑스어 사전이었다. 59년간의 작업 끝에 1694년 펴낸 ‘아카데미 사전’은 프랑스어 용법을 확립하고 철자법을 표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멸의 지성’으로 불리며 최고의 지성인으로 대접받는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 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다섯 번의 추천 끝에 1841년에야 이름을 올렸고, 장 자크 루소는 당시 스위스인으로 취급돼 결국 아카데미 회원의 명예를 누리지 못했다.
아카데미프랑세즈가 최근 코로나19를 뜻하는 ‘코비드-19’를 여성 명사로 규정해 때아닌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중심 단어인 질병(disease)과 같은 의미의 프랑스어(maladie)가 여성 명사라는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지만 여성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설립 초기에 여성 회원을 금지했던 아카데미프랑세즈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언어 정책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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