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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수록 기억력 떨어진다? 천만에! '달라지는' 것뿐

■[책꽂이-석세스 에이징]

대니얼 J. 래비틴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

美신경과학자의 노화 선입견 반박

노년기때 전화번호 등 패턴기억 잘해

뭔가 하려는데 갑자기 기억 안나는건

경험치 꺼내쓰는 데 할애하기 때문

노화 탓 말고 호기심·관계성 키워야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KFC 매장.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는 62세에 KFC를 창업했다./AP연합뉴스




미국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에 제대로 붓을 잡았다. 그림은 91세 때 완성한 ‘시골 결혼식’.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많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국민 화가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가정부, 농부의 아내로 살았던 모지스는 젊어서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그가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것은 보통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거나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 도 있는 75세 나이에 이르러서다. 하지만 그 어떤 정규 교육을 받은 화가보다 모지스의 화폭에 담긴 이야기는 풍부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화랑들은 열광했다. 모지스는 1961년 10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인가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다.”

이런 그녀의 삶을 미국의 유명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J. 래비틴이 주목했다. 걸핏하면 나이를 탓하는 세상의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서다. 그의 저서 ‘석세스 에이징’에는 모지스 외에도 각각 82세, 80세 나이로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 앤 프랭키(2019)’에 등장한 배우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 한 번도 인생에서 성공한 경험이 없었지만 62세에 KFC 창업에 도전했던 할랜드 샌더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어떤 연령대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륜은 뇌과학, 노화에 대한 오해 버려라
이들처럼 멋진 노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모든 걸 노화 탓으로 돌리지 말란 얘기다.

사람들은 대체로 노화를 거부하고, 때로 노화를 혐오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과 지능이 감퇴하고, 사회경제적으로 퇴보한다고 굳게 믿는다. ‘노화’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온통 부정적이라고 저자는 한탄한다.

하지만 책은 나이가 든다고 무조건 기억력과 지능이 감퇴하는 것은 아니라며 세상의 선입견에 반기를 든다. 뇌의 대표 기능인 ‘기억’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특정 냄새를 기억하고, 학교나 일터로 가는 최적 경로를 알고, 어려운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지 않는 과정을 전부 ‘기억’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사실 이는 외현 기억, 암묵 기억, 절차 기억, 의미 기억 등 저마다 다른 체계가 작동한 결과다. 이중 어떤 체계는 젊을 때보다 덜 작동하고, 또 어떤 체계는 나이가 들어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가령 뭔가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는데 애초 무엇을 꺼내려 했는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기억력 감퇴를 탓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마흔을 넘어서면 우리 뇌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심사숙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외부 환경에서 비롯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쓰는 시간은 점점 줄인다. 즉 경험치를 꺼내 쓰는데 더 집중하기 때문에 단기 기억 체계는 덜 활용하게 된다. 뇌 기능 퇴화가 아니라 살아온 궤적, 경험치가 늘어난 데 따른 뇌 기능의 가중치가 변화하는 것이다.





호기심은 노년기의 힘이다
저자는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는 실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적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경험치가 늘어 패턴을 알아차리거나 미래 결과를 예측하는 뇌의 기량은 더 향상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연륜’이라 말하는 게 뇌과학으로 설명되는 지점이다. 물론 치명적 질병이 있는 경우는 예외지만, 일반적으로는 노화를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달라지는’ 것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뇌 기능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면 노년기를 인생의 정점으로 만드는 데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이른바 코치(COACH) 원칙을 제안한다. 호기심(Curiosity), 개방성(Openness), 관계성(Associations), 성실성(Conscientiousness), 건강한 습관(Healthy practices)이 이에 해당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서양 속담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 호기심과 개방성은 오히려 산소 같은 역할을 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 된다. 외로움은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성격 장애, 인지력 저하 등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의료 문제의 원인이다.

생체 리듬을 잘 활용하면 신체 건강과 집중력을 모두 높일 수 있다.

‘언제’는 ‘무엇’ 만큼이나 중요하다. 네덜란드 체스 명인이자 심리학자 아드리안 데 흐로트는 92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 25년 동안 유난스러울 정도로 같은 시각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힘을 믿어야 한다. 긍정 정서는 뇌의 쾌락 회로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했다. “행복은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에, 다른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있다.” 2만3,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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