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중인 중남미가 코로나19의 핫스폿(집중발병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 비해 경제여건이 열악한 중남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고 생활고로 인한 시위도 이어져 국가 붕괴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519만명을 넘은 가운데 남미 국가에서만 55만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했다. 멕시코 등 중미 국가까지 합치면 확진자 수는 60만명에 육박해 전 세계 확진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중남미에서 나오고 있는 셈이다. 확산세도 거세다. 로이터통신은 전 세계적으로 이번주 초에 발생한 신규 확진자 9만여명 중 중남미에서 3분의1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확진자가 많아진 브라질이다. 이날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는 31만912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는 지난 2월26일 첫 보고 이후 이달 3일 10만명, 14일 20만명에 이어 1주일 만인 이날 30만명 선을 넘어섰다.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에서 이처럼 확진자가 급증하는 것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안이한 대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내리는 대신 “일터로 가라”고 독려했다. 그는 또 말라리아치료제 클로로퀸 계열의 유사 약물인 히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19 환자에게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보건장관 등과 갈등을 빚다 이들이 잇따라 사임하면서 컨트롤타워가 실종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실책이 이어지자 민심도 돌아서고 있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따르면 여론조사 업체 이페스피가 16∼18일 실시한 조사(오차범위 ±3.2%포인트) 결과 보우소나루 정부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5%, 보통 23%, 부정적 50%로 나타났다. 지난달 초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는 3%포인트 낮아졌고 부정 평가는 8%포인트 높아졌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대한 전망도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초와 비교해 잔여 임기에 대한 긍정적 기대치는 34%에서 27%로 낮아지고 부정적 기대치는 37%에서 48%로 높아졌다.
대통령 탄핵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정치적 혼란도 커지고 있다. 노동자당(PT)을 비롯한 7개 좌파 정당은 21일 호드리구 마이아 하원의장에게 보우소나루 대통령 탄핵요구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개별 정당이나 의원이 탄핵요구서를 낸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공동명의로 제출한 것은 처음이다.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면서 브라질 의료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 정부 연구소의 전염병 및 건강감시그룹 책임자인 클라우디오 마이에로비치는 일간 가디언에 “브라질은 전염병 대응에 실패했다”며 “현재 5개 주에서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고 밝혔다.
브라질뿐 아니라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은 페루를 포함해 다른 중남미 국가들 역시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어서 의료 시스템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적극적인 검사나 추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반구 국가들은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어 재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는 최근 브라질·페루·콜롬비아 국경 지역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에 우려를 표명하고 가난한 지역의 취약한 인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 장기화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시위도 확산하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는 빈곤층 거주지역인 엘보스케에서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거센 시위와 약탈이 벌어져 군 병력까지 배치됐다. 콜롬비아와 과테말라 등지에서도 굶주린 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보건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부 중남미 국가의 상황이 통제불능 상태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국가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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