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이뤄진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간혹 어떤 이는 신이 지름길이라도 귀띔해 준 것 마냥 꿈을 향한 인생 레이스를 쉽게 끝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험하고 굴곡진 길을 걷고, 때로는 잘못 된 길로 들어서 헤맨다. 그러다 결국은 현실과 타협해 중도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포기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간에 미련이란 게 늘 남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는 가수 이용의 오래된 노래를 우연히 듣기라도 하는 날이면 울적함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몹쓸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 꽤 많이 늦었지만 ‘인생 뭐 있나’란 심정으로 용기를 낸 사람이 있다. 배우 정진영이다. 아니, 이제는 배우이자 영화 감독 정진영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 열 일곱에 품었던 꿈을 무려 40년이 지나 쉰 일곱에 이뤘기 때문이다. 다음 달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 개봉을 앞두고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정 감독이 최근 열린 사전 영화제작 보고회에서 자신의 꿈과 직접 만든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고교 생기부에 적힌 장래희망 '영화감독' |
하지만 늘 아쉬웠다. 대학 때부터 동아리 선배들이 도맡던 연출이 탐났었다. 그래서 30대 초반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기도 했지만 스스로 부끄러워 포기했다. 정 감독은 “배우 경력이 쌓일수록 오히려 스스로 연출할 능력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워낙 어렵고 방대하고 많은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배우 경력을 30년 넘게 쌓았고, 50대로 접어들었다.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는 날이 많아졌다. 정 감독은 “겁만 내다가는 내 인생이 그냥 지나가겠다 싶었다”며 “비판이나 비난을 받더라도 감수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해봐야겠다는 뻔뻔함을 갖게 됐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시골 마을의 형사가 하루 아침에 삶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충격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다. 조금 더 큰 주제로는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 사이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정 감독은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이야기인데 이리저리 숙성돼 영화가 된 것 같다”며 “연출을 하게 된다면, 연출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이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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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그는 “영화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며 “감독으로서 오래 수련한 사람도 아니니까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감독들 하는 말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
다행히 시나리오를 보낸 다음날 배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 감독은 “그날 정말 고마워서 기쁨의 술을 마셨다”며 “다른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정진영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하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라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배우 경험이 도움된 부분도 있다. 정 감독은 “배우들은 잘 준비를 한다”며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가 준비해온 걸 충분히 믿고 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그는 “배우는 굉장히 예민한 존재”라고도 덧붙였다. 수십 년 배우로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현장에서 배우들과 소통했다고 회상했다.
당면 문제는 요즘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코로나19다.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태원발 불안감이 극장가를 맴돌고 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떨리고, 역시 코로나19도 걱정된다”며 “그래도 제가 할 일은 다 끝내서 담담하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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