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여명] 현금 '제방높이' 기업명운 갈랐다

[이철균 시그널부장]

과도한 배당·자사주에 21년 흑자 보잉 추락

공적자금 GM, 106억 달러 자사주매입 휘청

韓 대표기업, 사내유보금 등 제방 쌓아 버텨

한계 드러낸 주주자본주의…본질 주목해야

시그널부 이철균 부장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 중 하나다. 그런 GM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134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고 5년 뒤에는 민영화했다. 미 정부는 그 과정에서 112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미국의 대표기업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문제는 GM의 그 뒤 행보다. GM은 2015년부터 4년간 자사주 매입에만 106억달러나 썼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직원 1만4,000명을 해고했다. 부족한 자금 45억달러를 외부에서 조달할 것이라는 계획도 내놨다. 주주자본주의 천국, 미국 경제의 민낯이다.

GM에만 그칠까. 사례는 차고 넘친다. 세계 최대 항공기업인 미 보잉사.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보잉은 3월 정부와 금융기관에 600억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다. 2018년까지 21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기업인데도 자금 경색이 왔다는 얘기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의 여파다. 이면을 보면 다른 요인도 보인다. 보잉의 21년간 당기순이익을 단순 산술계산하면 누계가 746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돈이 없다. 많이 썼다는 얘기다. 몇 가지만 봐도 실체는 드러난다. 1997년 보잉의 부채는 250억달러였다. 부채는 2018년 1,169억달러로 늘었다. 부채가 5배 가까이 늘 동안 보잉의 자기자본은 급감했다. 왜 그럴까. 보잉은 자사주 매입에 막대한 돈을 썼다. 10년(2010~2019년)간 쓴 자사주 매입 규모는 434억달러다. 자사주 대부분을 소각해 자기자본은 쪼그라들었다. 배당률도 20%나 됐다. 통장에 돈을 쌓기보다는 주주의 이익확대에 더 치중했다. 지갑이 비어 있으니 위기 때 파산을 막기 힘들다.

주주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잊을 만하면 한국의 대표기업들을 공격했다. 경영 투명성을 확대하고 주주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목적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회사에 돈을 쌓아놓지 말고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주가를 올리라’는 내용이다. 물론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은 수용할 내용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선을 넘기도 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2015년에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확보했다고 공개한다. 여러 요구를 했는데 그 가운데는 삼성전자의 30조원 특별배당도 있다. 엘리엇은 2018년에는 현대차그룹 3개사의 지분 10억달러를 산 뒤 8조3,000억원(현대차) 배당을 역시 요구한다.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엇은 숱한 화제를 남기고 삼성물산은 2016년 3월, 현대차 그룹은 2019년 12월에 떠났다.



1년 남짓이었지만 엘리엇이 남긴 파장은 컸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두고 정치권·시민단체는 잊을 만하면 문제를 제기했다. 쌓아두고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현금성 자산은 미래 준비금”이라는 설명도 통하지 않았다. 평행선을 달려왔다.

코로나19는 이런 논란도 정확하게 볼 기회를 제공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반복했던 글로벌기업이 도산 직전까지 몰리고 있지만 사내 유보금의 ‘제방’을 쌓은 국내 대기업들은 그래도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1998년 삼성전자의 부채는 17조2,000억원, 자본총계는 5조8,000억원이었다. 20년 뒤인 2018년, 부채가 약 5배(91조6,000억원) 늘 동안 자본총계(247조7,000억원)는 40배 이상 커졌다. 엘리엇의 공격을 받았던 현대차도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은 5,000억달러에 달하는 돈을 기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조건은 달았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은 금지한다는….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HSBC는 배당을 줄이라는 영국중앙은행(BOE)의 압력에 74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배당을 취소했다. 위기는 주주자본주의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fusionc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