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 얘기 옳지 않아" 그 전은 군사독재 |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87년 체제를 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상임위원장을 여야가 의석 비율에 따라 분배하는 전통은 1988년에 생긴 것으로 안다”며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의석 구도가 생겼기 때문에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어 야당에 상임위원장 자리를 안배했던 것이 그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이 이야기한 ‘87년 체제’ 이전은 6~12대 국회 시기다. 6대 국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제3공화국 이후 처음으로 열린 국회고 12대 국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하의 마지막 국회다. 즉, 과반 여당의 상임위 독점은 야당이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군사 정권의 유산인 셈이다. 당시 국회는 독재 정부가 법안을 처리하고자 하면 이를 통과시켜주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통법부(通法府)’라는 오명을 안았다.
여야가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한 것은 13대 국회가 처음이다. 제6공화국이 열리고 처음 치러진 선거인 13대 총선의 결과,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국면이 펼쳐졌다.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한겨레민주당 1석, 무소속 9석으로 의석 수가 쪼개지며 ‘정치의 황금분할’이 이뤄진 시기였다. 정치에 대화와 타협이 불가피하자 상임위원장 역시 의석 별로 배분하게 됐다.
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명령은 ‘야당의 견제나 감시 역할’보다는 ‘야당의 진정한 국정 협조’를 분명히 명령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야당의 옳은 자세”라고 경고했다.
개혁 과제 '자구심사 폐지', 속내는 야당 힘뺴기? |
체계·자구 심사권이 ‘일하는 국회’를 막아온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내용도 법사위에만 올라오면 체계·자구 심사를 이유로 중단되는 이유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25일 국회에서 열리는 민주당 ‘일하는 국회추진단’ 첫 회의에는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정춘숙 의원은 “제가 여성가족위원회에 있었는데 법사위에서 자구 심사 아니라 조항을 건드리고 이런 것을 보면서 반드시 법사위의 자구 심사권, 법을 훼손하기도 하고 통과 안시키는 주된 역할을 하는 게 해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사위에 소속된 당사자였던 조응천 의원은 “그 때 입에 달고 산 게 암 걸리겠다는 말”이라고 토로했다. 조 의원은 “우리 20대 의원 중에 출마하지 않는 표창원·이철희 의원 등 법사위 출신이 많았다”며 “그게 다 월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위성곤 의원 역시 “법사위 자구 심사 권한은 반드시 폐지 혹은 변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체계·자구 심사권을 ‘여야 간 원 구성 협상‘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사위는 전통적으로 제1야당이 관례처럼 가져가곤 했다. 앞서 말한 타 상임위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는 상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17대 이후부터 야당이 법사위원장, 여당이 국회의장을 맡았다. 원 구성 협상에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여당이 ’법사위 힘 빼기‘를 주장하는 건 곧 ’야당 힘 빼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야당은 이 같은 민주당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통합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지난 20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여당에서)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주장하는데 이는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위험한 발상이다. 해당 상임위가 이견을 조정해 심사하는지, 위헌적 법률을 제대로 거르는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라며 “각 상임위에서 무책임하게 통과시키고 법사위에서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는 식으로 (법안심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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