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회장은 34세이던 지난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해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로 키워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기술은 18개, 보유 특허는 2,100여개다. 이런 결과는 기술자립을 외치며 달려온 황 회장에게는 훈장과 다름없다. 지금도 주성엔지니어링은 매년 매출의 15~20%를 연구개발(R&D)에 쏟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D램 제조의 핵심인 커패시터(capacitor) 전용 증착장비를 1993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는 불가능하다”고 하던 때다. 삼성전자 등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이 앞다퉈 황 회장을 찾았다. 하지만 우군으로 만났던 삼성전자와는 나중에 껄끄럽게 헤어졌다. 국내 반도체 회사 가운데 주성엔지니어링이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곳도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황 회장은 20년 만에 삼성전자와 다시 손잡을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주성의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쓰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못 쓰는 것”이라면서 “사서 쓰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이지, 파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제든지 납품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삼성전자가 받아줘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삼성전자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에 꾸준히 납품하고 있고 추가적인 (납품) 이야기들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숱한 난관을 뚫고 기술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개발과 보호에 누구보다 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기업들의 기술보호를 위해 정부가 파격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를 들어 다른 기업의 기술을 몰래 탈취한 기업은 영영 문을 닫게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황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매일같이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데는 비슷한 기술은 아예 개발할 생각조차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남의 기술을 베꼈다가는 회사가 망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이의 기술보다 한발 앞선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절박함이 크고, 이런 분위기가 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정부도 중소기업이나 벤처·스타트업의 기술보호를 위해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랑이는 갓 태어난 새끼를 벼랑으로 떨어뜨려 살아서 기어 올라온 새끼만 키운다고 알고 있지만 황 회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호랑이도 새끼가 야성을 갖고 스스로 사냥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준다”고 말했다. 벤처·스타트업들이 개발한 기술특허를 대기업이나 경쟁사들이 함부로 탈취해 가져가지 못하게 정부가 추상같이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기술특허를 빼앗아서 남기는 이익이 더 크다면 기술탈취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남의 기술을 뺏었다가는 빼앗은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법과 집행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소·벤처기업들도 기술을 스스로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돼지 목에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걸려 있으면 누구든지 빼앗으려 들겠지만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걸고 있으면 누구도 범접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찬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정당한 가격을 주고 얻으려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거래 없이 뺏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을 보호하는 것은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지키지 못할 혁신은 뺏기거나 모방당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고 만다”는 게 황 회장이 ‘후배’ 기업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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