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투어 출전권을 따고 올라온 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들어간 직장이 없어진 거잖아요. 안타까운 상황의 후배들을 생각하다가 한 번은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1일 ‘한국프로골프(KPGA) 스킨스 게임 2020’에 참가한 박상현(37·동아제약)은 새 시즌 첫 KPGA 주관 대회에 나선 소감을 밝히다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프로 들어 20년 넘게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휴게소에 들른 기분이었다. 대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는 그는 “직장 잃은 분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기자회견 뒤 박상현은 “저는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받았지만 일자리가 없어 괴로워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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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개막했어야 할 투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7월로 밀리면서 특히 남자 프로골퍼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문경준(38·휴셈)은 “남자 선수들은 기업 스폰서 도움을 받는 기회가 많지 않고 대부분이 대회 상금에 의존한다. 평소 같으면 4~5개 대회를 치렀어야 할 시기인데 그게 막히면서 마이너스통장을 쓰는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어 “각계의 모든 분들이 힘든 상황이니까 불평만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투어가 시작됐을 때 최고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어려워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경준과 박상현은 각각 아들 셋, 아들 둘을 둔 아빠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이 문을 닫았지만 대신 아들들과 함께할 시간은 부쩍 늘었다. 아이들의 목욕을 돕고 직접 ‘달고나 뽑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문경준은 “처음에는 ‘며칠 이러다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육아와 밥 짓기, 설거지를 했는데 얼마 안 가 과부하가 오더라”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매년 겨울뿐이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아빠 역할을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에게 휴대폰을 사줬는데 연락처에 저를 ‘골프선수 아빠 문경준’이라고 저장하는 것을 보고 느낌이 남달랐다”고도 전했다. 박상현은 “지난 시즌까지도 ‘아빠, 몇 밤 자고 와?’라고 묻던 아들이 요즘은 ‘골프 그만둔 거야? 왜 안 나가?’라고 묻는다”며 “아침에 눈을 뜨면 잔디를 밟을 생각보다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치울 생각이 먼저 든다. 집안일을 전담하는 아내의 고충과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경기 용인의 플라자CC에서 박상현은 함정우(26·하나금융그룹)와, 문경준은 이수민(27·스릭슨)과 짝을 이뤄 2대2 포볼(각자 공을 친 뒤 더 좋은 스코어를 팀 점수로 반영) 매치플레이 대결을 벌였다. 박상현과 함정우는 각각 2018년 상금왕·신인상, 문경준과 이수민은 각각 2019년 대상(MVP)·상금왕 출신이다. 이수민이 첫 홀부터 샷 이글로 축포를 쏜 가운데 두 팀은 지정 기부처에 총상금 1억원을 나눠 전달했다. 총상금 1억원은 하나금융그룹이 지원했고 대회 운영비인 약 1억원은 제네시스가 부담했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문경준이었다. 2,000만원이 걸린 18번홀(파4)에서 7~8m짜리 끝내기 버디를 터뜨려 5,600만원 대 4,400만원의 승리를 이끌었다. 넷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문경준은 9번홀(파5·530m)에서 진행된 롱기스트 드라이브 콘테스트에서 무려 290m를 보내 장타 보너스 200만원을 가져간 데 이어 16번홀(파3) 니어리스트 대결에서도 티샷을 핀 2.5m에 붙여 200만원을 따냈다. 이벤트 대회로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한 KPGA 투어는 오는 7월2일 개막해 11개 대회 일정에 돌입한다.
/용인=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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