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서울시의 선제적인 대응과 그에 따른 결과는 굉장히 놀랍습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
“5년 전 발생한 ‘메르스’ 사태로 얻은 교훈과 경험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신속대응팀을 즉각 파견하고 확진자 동선을 체계적으로 확보한 것이 ‘K방역’의 원동력입니다.”(박원순 서울시장)
세계적 문명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코로나19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할 사회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도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기에 감염병에 취약할 뿐 아니라 경제위기에 더 큰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요 화두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4일 서울시가 주최한 온라인 국제회의 ‘CAC 글로벌 서밋 2020’의 세부 행사로 진행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온라인 대담에 참석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한국과 미국의 중요한 차이는 한국인들이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정부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한국의 K방역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지금까지 확산 속도를 조절하는 데 성공했고 확진자 동선을 체계적으로 추적해 서울의 누적 사망자는 4명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19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달라질 인류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류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코로나19는 사실 새롭지 않고 익숙한 질병”이라며 “흑사병이나 천연두 같은 감염병은 치사율이 50%나 됐지만 코로나19는 2% 수준이라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감염병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감이었지만 코로나19에 비하면 전파 속도가 느렸다”며 “지금은 항공편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고 누구도 면역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분석했다. 박 시장은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말 처음 발생한 뒤 불과 3개월 사이에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순식간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발생하고 사회 전반에 극적인 변화를 초래했다는 게 기존 감염병과 다른 점”이라고 평가했다.
다이아몬드 교수와 박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국제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놓고도 공통된 인식을 나타냈다. 경제발전에 우선순위가 밀린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평소 “재난은 취약계층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고 가장 많은 피해를 안긴 뒤 가장 늦게 떠난다”고 강조해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와 이주민의 코로나19 치사율이 월등히 높다”며 “사회 불평등이 감염병을 만나 재앙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사회적 불평등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기폭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서울시도 자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자영업자에게는 생존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앙정부와 협력해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서울시의 노력과 정책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지금보다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미국 상류층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스스로 위험을 느끼자 이제야 빈곤층을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박 시장과 대담에 나선 다이아몬드 교수는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겸 문명연구학자다. 1937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엇이 인류문명 발달의 차이를 초래했는지를 밝힌 역저 ‘총, 균, 쇠’를 집필해 지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생리학자로 출발했지만 조류학·생물리학·생태학·지리학·진화생물학·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대가의 경지에 오른 지식인으로도 추앙받는다. 지난해에는 국가의 위기를 심층진단한 6년 만의 신작 ‘대변동’을 펴냈다. 2016년 서울경제가 주최한 ‘서울포럼’ 기조강연을 위해 20여년 만에 방한한 바 있다. 평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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