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미지의 대상이었다. 고개만 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눈부시게 빛나다가도 다른 날엔 갑자기 폭군 같은 얼굴로 세찬 비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하늘이 다정한 별빛의 향연, 한겨울 마법 같은 눈송이를 보여주면 어른들조차 구름 위 요정 마을을 꿈꿨다.
결국 인간은 미지를 탐하기 위한 모험을 결심하고, 하늘에 도전장을 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추락했지만, 19세기 유럽인들은 달랐다.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열기구를 만들고 누가 더 높이 하늘에 닿는지 경쟁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862년 영국인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상공 1만m를 넘어서는데,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에어로너츠(감독 톰 하퍼)’다.
주인공은 하늘에도 분명 과학적 질서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와 창공을 사랑하는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 렌(펠리시티 존스)이다. 이들은 인류 최초로 성층권에 진입해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압력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나비떼가 대류권 상층에서 이동한다는 사실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글레이셔는 1892년 열기구를 타고 성층권에 진입해 오늘날 일기예보가 가능케 한 실존 인물이다. 감독인 톰 하퍼는 글레이셔의 모험을 기록한 리처드 홈즈의 소설 ‘하늘로의 추락’을 바탕으로 새롭게 영화를 구성했다.
다만 어밀리아 렌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 글레이셔와 함께 열기구를 탔던 사람은 남성 열기구 조종사 헨리 콕스웰이었다. 이런 이유로 영화는 영국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영화에 주도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인물은 다름 아닌 렌이다. 기존 모험영화에서 여성 인물이 ‘민폐’ 캐릭터를 맡는 것과 달리 렌은 샌님 기상학자를 보호하며 아찔한 창공에서의 사투를 거의 도맡다시피 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의 연기 합은 나무랄 데 없다. 이들은 전작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 이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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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기회가 온다면..." |
영화를 보는 내내 은근히 계속되는 밀실 공포감도 관람의 묘미다. 하늘은 무한하게 펼쳐져 있지만 주인공들은 오직 좁은 열기구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안전을 완벽하게 담보해주지 못하는 열기구의 취약함도 긴장감을 배가한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하늘은 황홀한 미지의 영역이란 뜻으로도 해석된다.
영화 속 글레이셔의 친구 존 트루(히메쉬 파텔)는 “살면서 세상을 바꿀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며 글레이셔와 렌의 도전을 응원한다. 그의 말처럼 기회가 왔을 때 도전을 담대히 받아들이는 인간이야말로 미지의 하늘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 러닝타임 100분.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사진제공=더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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