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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어떻게 풀까] DJ, 과거보다 미래 지향...'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 이끌어

■ 다시 주목 받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DJ '화해' 카드로 '사과' 도출, 해묵은 갈등 해소 계기 마련

"대일 강경은 아베 돕는꼴...양국 명분보다 실리 챙기는 외교 필요"

韓, 美·中서 줄서기 강요받아 "日,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야"

지난 1998년 10월8일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이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갈등이 전례 없는 파국을 향하고 있는 지금, 22년 전인 지난 1998년 10월18일 당시 김대중(DJ)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다시금 주목하는 것은 그로 인해 한일 양국이 해묵은 과거의 갈등을 벗어던지고 미래를 향한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DJ·오부치 선언’은 한국을 지칭한 일본의 첫 사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전에도 일본은 무라야마 담화(1995년)를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아시아의 여러 나라’라고 표현됐을 뿐 ‘한국’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선언을 통해 한국은 ‘화해’, 일본은 ‘사과’를 말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낼 수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회고를 들어보면,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의 화해, 일본의 사과’를 구상한 시점은 DJ·오부치 선언이 나온 1998년보다 최소 4년 이상 앞선다. 이 의원은 2018년 10월 DJ·오부치 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1994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 머물다 돌아온 DJ가 아태평화재단을 만들었던 때였다. 하루는 당시 신문기자였던 이 의원을 불러 일본 내셔널프레스센터에 가서 연설할 원고를 보여주더니 이렇게 묻더라는 것이다. “흔히들 한일관계를 말할 적에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고 일본이 늘 미래지향을 말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을 바꿔서 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한국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밂으로써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내려는 DJ의 구상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다듬고 또 다듬기를 거듭한 끝에 거둔 결실인 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지금 한일관계는 △불행한 역사 극복 및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민주주의·시장경제에 입각한 협력관계 강화 △한국의 대북 ‘햇볕정책’ 지지 등 DJ·오부치 선언의 공든 탑이 완전히 무너진 형국이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힘써 올려세우고 허물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신화’에 비유될 정도로 기반이 취약하다지만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국내 자산 강제매각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명분론에 사로잡혀 자칫 공멸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있을 만큼 위태롭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공시송달까지 아직 2개월가량 남았는데 그 안에라도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경색된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양국 모두 명분론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외교가 필요하다. 김숙 전 유엔 대표부 대사는 “어떻게 하면 (한일) 양국관계가 증진할까,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며 “일본이 너무 편협한 데 대해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100%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한일관계의 각종 현안은 아베 정권이 전후 최고의 우익정권이라 합의가 쉽지 않다”면서 “그래도 지금 우리의 대일 강경조치는 아베 정권에 산소호흡기를 다시 대주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중 양대 강국으로부터 자기 쪽에 줄을 서라고 강요를 받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을 외교적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미중 갈등 속에 우리의 외교 입지가 편하지 않다”며 “그런데 한일 갈등까지 겹치면 우리가 외교를 해나가는 데 있어 정말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입장에서 보면 대중 봉쇄전략의 핵심축이 한국과 일본”이라며 “한일 외교관계가 역대 가장 나쁜 상태에서 파국을 맞으면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여전히 일본은 살아 있는 외교 카드”라며 “우리나라의 외교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지금 일본과의 관계를 열어놓아야 외교 선택지가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신냉전 시대가 세계화된 경제블록이 아닌 지역 단위로 축소될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한일 간 경제협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다. 만약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경제전쟁을 벌일 경우 양측 모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한일 양국이 △문희상안 재논의 △실질적 고위급 대화채널 가동 등의 노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경제와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쳐 우리 부담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면서 “지난 국회에서 논의됐던 문희상안을 국회에서 신중히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우인·김정욱·김인엽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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