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 부정승계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애초 검찰은 이 부회장의 신병을 확보해 최대 20일 동안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의혹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구속수사에 실패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다만 법원이 이 부회장을 둘러싼 각종 혐의에 대해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고 밝히면서 양측 간 치열한 ‘수 싸움’은 앞으로 있을 재판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불구속재판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이 부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은 물론 혐의 소명까지 인정하느냐가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구속영장 발부사유 가운데 도주 우려가 사실상 적용되기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앞서 2015년에 발생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이 부회장 측이 증거를 인멸할 수 있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둘러싼 각종 혐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1차 결론을 내렸다. 이 부회장이 증거인멸·도주할 우려가 없는 만큼 제기된 의혹을 두고 양측이 재판에서 법리 공방을 벌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것이다. 검찰·삼성 측이 혐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최종 판단을 앞으로 사건을 맡을 재판부로 넘긴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전직 임원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합병 등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보고와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과 함께 합병 과정을 보고한 내부문건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 부회장은 두 차례의 검찰 소환조사에서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은 바가 전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다만 변수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여부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재차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으나 결단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검찰이 1년6개월 이상 수사를 진행한데다 오는 7월 인사를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영장을 다시 청구하려면 이른바 ‘스모킹건’이 필요하다. 혹시 재청구해 다시 기각되면 검찰은 앞으로 재판에서 한층 불리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국내외 경기 부진을 극복하려는 분위기에서 검찰이 삼성을 지나치게 흔든다는 식의 여론이 높아졌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시간이 촉발한 상황에서 검찰이 결정적 단서나 증언을 숨기고 2차 구속영장 발부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오히려 2차전을 법정 공방으로 보고 혐의를 다져나가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무리하게 영장을 재청구하기보다 재판 준비에 집중할 것이라는 뜻이다. 양측이 재판에서 공방을 벌일 수 있는 부분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과정에 불법·고의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승계가 유리하도록 삼성물산·제일모직 주가를 삼성 측이 조작했는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과정에 고의적 분식회계가 존재하는지 등을 증명해야 한다. 게다가 이들 과정에 이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는지도 밝혀야 한다.
반면 삼성 측은 불법적 시도가 전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불법행위가 당연히 없을 뿐 아니라 고의성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에 의도는 물론 불법도 없는데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이 관여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 삼성 측의 일관된 논리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 마무리될 삼성 수사에서 양측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부분은 불법성과 의도성”이라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과정에 불법성이 있다는 검찰 측 주장과 사실무근이라는 삼성 측 입장은 앞으로 있을 재판에서도 꾸준히 부딪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이 부회장이 연루됐는지가 앞으로 재판에서 가장 크게 충돌할 부분”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이른바 스모킹건을 제대로 제시할지 또 이를 삼성 측에서 방어할지가 앞으로 재판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구민·안현덕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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