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브라만 좌파(학력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본 엘리트)가 담합을 통해 지배정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이러한 정당들의 변화는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봅니다”
후속 저서를 내놓기까지 7년이나 걸렸지만 독자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2013년 ‘21세기 자본론’으로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 받게 된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는 지난 해 말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선보였다. 한국어판은 지난 달 29일 발행됐다. 초판 1만 부가 곧바로 소진됐다. 2쇄가 제작 중인 가운데 그는 한국 기자들과 출간 기념 간담회를 진행했다.
당초 한국을 직접 찾을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19 탓에 서울-파리 화상 연결을 통해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강화한 정치·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최근 핫 이슈로 부상한 기본 소득에서 훨씬 더 나아간 기본 자본의 도입의 필요성도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주장했다. 또 그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도 낙관적 변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자세를 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경제학 이론서가 아니다. 적어도 4가지 서로 다른 영역들이 함께 만나서 책을 구성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가 함께 다뤄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서처럼 읽히기도 하구요, 그리고 문학까지 중요 요소로 등장한다. 이렇게 집필한 이유가 뭔가.
이 책은 경제서라기보다 불평등의 역사, 그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은 지나치게 서구 편향적, 서구중심적인 책이었다. 불평등이 이데올로기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이번 책은 훨씬 더 폭넓은 지리적 문명적인 영역을 다룬다. 또 역사서의 형식을 취하면서,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단지 경제적이거나 기술적인 영역을 통해 규정되기보다 정치세력이나 그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의해 먼저 규정이 된다는 사실을 보다 또렷이 그려낼 수가 있었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언제나 경제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놀라운 혁신들이나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지배세력들은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사회구조는 가능하지 않고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아주 많은 나라들에서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고, 나는 이 책에서 그것들을 보여주려 했다.
"학력 엘리트와 자본 엘리트의 담합 정당.. 변해야" |
프랑스를 비롯해서 많은 나라들에서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의 담합을 통해 지배정당을 형성하고 있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이러한 정당들의 변화는 가능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미 적지 않은 변화들이 시작됐다. 좋은 방향이기도 하고, 안 좋은 방향이기도 하다. 유럽의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던 정당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사라지고 있기도 하고, 새로운 정당들이 탄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정당들의 변화를 말하기 전에, 먼저 얼마나 큰 폭의 역사적 변화가 유권자들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0년에서 1970년 사이 서민계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미국의 민주당, 유럽의 다양한 형태의 좌파 정당 혹은 사민당들이 점점 그들의 신뢰를 잃고, 고학력 유권자들의 정당으로 변모하게 됐다. 반면 우파 정당이나 중도우파 정당들은 자산과 소득 상위 사람들, 즉 상인 우파들이 모여 있는 정당이다.
교육 엘리트와 자본 엘리트간 공생이 곳곳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들의 담합 형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좌파들 입장에선 배신자라는 고발 앞에 서게 된다. 그들이 과거의 지지층인 서민들의 신뢰를 잃은 이유는 그들이 지속적으로 해오던 서민층의 이해를 대변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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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반대하지 않아.. 더 나아가야" |
둘 다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라는 어휘보다는 ‘최저소득’이라는 어휘를 선호한다. 기본소득(revenu universel)이라는 어휘는 마치 그것이 모든 복지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존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기초생활비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나라마다 그 비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500유로에서 600유로 정도를 넘지 않는다. 이 정도 금액은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보다 최저소득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적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소득을 지급한다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세금으로 다시 가져갈 필요가 없다. 그 보다는 ‘최저소득’ 수혜자의 범위가 좀더 넓게 확대 되고 체계화 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사적소유(자본)를 나눠 가져야 한다. 사적소유에 있어서 가장 큰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세기를 거치며 소득과 급여의 불평등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자산의 집중은 여전히 엄청난 수준이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자산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부자들만 자녀들에게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종잣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아이들이 만 25세에 이르면, 주거를 마련하거나, 창업을 구상할 수 있는 종잣돈을 사회가 함께 마련해주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 코로나 이후 권력 잃을 가능성 높아" |
역사를 살펴보면,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위기가 경제 문제에 대한 지배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유권자, 시위대, 시민들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현 시점에서 보면 코로나19는 매우 모순적인 두 가지 결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공공의료서비스 강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이를 위한 시민연대의 목소리가 강력하게 들려오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공중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이나, 최저소득 같은 복지체계 신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경계 강화와 국가중심주의, 민족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전염병이라고 하는 재앙은, 중세 때부터 역사를 통해 보건대, 이방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키우게 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서는 일정한 사회적 퇴행도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절망감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노포비아적 광기에 미래를 맡기고 싶어하진 않는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트럼프는 권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인물을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시기에 계속 지도자로 삼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더 큰 불안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부유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로나19로 드러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신이 제시하는 방안은 무엇이 있나.
한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가 누진소유세와 누진소득세를 제정해야 한다. 소득은 1년 동안 벌어 들인 것을 말하고 부는 집, 금융 포트폴리오, 사업 등 부채를 뺀 자산을 뜻한다. 소득과 부 모두 당신이 국가재정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주요 지표다. 누진소득세만 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소득은 매우 낮은데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 반대도 있다. 특히 백만장자들은 세금이나 사업상의 이유로 소득이 매우 낮다. 미국의 워런 버핏이 자기 비서보다 자신이 더 낮은 소득세를 낸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지출을 언제까지나 국채로 해결할 수 없다. 공공보건, 공공교육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많은 부를 축적한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이를 요구할 수 있겠나.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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