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가져온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제노포비아적 광기에 미래를 맡기고 싶어 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권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인물을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시기에 계속 지도자로 삼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더 큰 불안에 빠지게 하니까요.”
2013년 저서 ‘21세기 자본론’으로 일약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8일(현지시간) 7년 만에 내놓은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파리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서울-파리 화상 연결로 진행됐다.
화상을 통해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는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연대와 평등의 실천이 늘고 있는 동시에 이방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경계감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연대와 배척의 갈림길에서 그는 코로나 이후의 미래를 낙관하는 쪽을 택했다. 대신 그는 “유권자, 시위대, 시민들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케티 교수는 현시대 모든 국가의 공통 문제인 코로나와 관련해 “많은 나라에서 이번 위기는 공중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며 “지난 20년 내지 30년간 투자가 가장 덜 된 영역(공공부문 일반)에 대한 뒤늦은 투자가 이제라도 이뤄지고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그는 국내 정치권에서도 최근 핫 이슈로 떠오른 기본 소득이나 최저 소득과 같은 복지체계 신설 논의도 본격적으로이뤄 질 것으로 내다봤다. 피케티는 자신의 신간을 통해서도 오늘날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청년 기본자본 도입, 노동자 의결권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으며,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기본소득 논의처럼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연대의 실천이 나오는 한편으로, 코로나 공포 속에 몇몇 나라들이 이미 겪고 있듯이 이방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는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노동 측면에서도 코로나 이후 세상은 두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과거에도 지독한 재앙이 세상을 덮친 뒤 농노들이 지주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적이 있지만 “반대의 상황도 역사적으로 목격되고 있다”며 “결국 그 경험을 겪어낸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와 그에 따른 공동의 행동들이 이후에 이어질 삶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과 노동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을 주문했다. 역사적으로 불평등을 구조화한 정치권이 시대 들어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더 많이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과거 서민 계층의 지지를 받았던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좌파 정당, 사민당 등이 고학력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변모한 후 자산 엘리트와 곳곳에서 공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케티 교수는 “많은 나라에서 브라만 좌파(학력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본 엘리트)가 담합해 지배정당을 형성하고 있다”며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이러한 정당들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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