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킴벌리의 농장주 드비어스 형제가 자신들의 농장에서 83.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했다. 드비어스 형제는 2개의 대규모 광산을 발견해 말 그대로 돈방석에 오르게 됐다. 수많은 광산업자가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몰려든 킴벌리는 일약 ‘황금의 땅’으로 탈바꿈했다. 네덜란드계 보어인들과 영국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보어전쟁을 벌인 것도 다이아몬드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비어스 형제는 영국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드비어스 광산이라는 명칭을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조건하에 광산을 처분해야만 했다.
드비어스가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로 자리 잡은 데는 1920년대 회장직에 오른 영국 이민자 어니스트 오펜하이머 덕택이 컸다.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가격 통제와 품질 관리를 통해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90%를 유통할 정도로 독점적 위상을 굳혔다. 그가 중량과 컷·색상·투명도에 따라 만든 네 가지 평가기준은 다이아몬드의 표준감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1935년 식민지 시에라리온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 광산의 독점 채굴권을 드비어스에 넘긴 것도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러시아와 호주 등에서 새로운 광산이 등장한데다 유럽연합으로부터 불공정거래 제재를 받으면서 드비어스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드비어스 대중화의 일등 공신은 광고 마케팅이다. 드비어스는 1947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광고 문구를 만들어 약혼과 결혼의 대표 예물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에는 루이비통과 함께 ‘드비어스 주얼리’ 브랜드를 선보이며 소비자 시장에 진출했다. 1999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59.6캐럿짜리 무결점 핑크 다이아몬드는 드비어스 손을 거쳐 경매 최고가인 7,100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드비어스 등 다이아몬드 업체들이 경기 불황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자 불어나는 재고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가격 할인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특히 소규모 업체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싼값에 방출하는 바람에 시장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영원하다지만 시장에서 영원한 독점은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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