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는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장사가 어려워지자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깎아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대에 서로 함께 살고자 하는 상생의 의지를 보여준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제가 마비되면서 어렵기는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는 착한 임대인 운동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장사가 안돼 임대료를 내기 어려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소송을 건 것입니다.
주인공은 미국의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과 모기업 L브랜즈 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빅토리아 시크릿이 뉴욕 맨해튼 헤럴드스퀘어에 위치한 매장의 소유자인 부동산투자회사 ‘SL그린’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은 임대료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도시죠. 실제 빅토리아 시크릿이 매달 SL그린에 내는 임대로는 어마어마 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크릿은 매달 93만 8,000달러(약 11억원)의 임대료를 SL그린에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은 지난 3월부터 ‘셧다운(폐쇄)’에 들어갔고 최근에야 78일만에 겨우 1단계 경제 정상화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이크루·니만마커스·JC페니·브룩스브라더스 등이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역시 최근 경영난이 심화 되면서 사모펀드에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리테일 업체들의 경영난으로 앞으로 빅토리아 시크릿과 같이 임대인과 임차인이 갈등을 빚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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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바다 건너 있는 한국의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말 기준 해외 부동산 펀드 규모는 56조 7,415억원(설정원본 기준)으로 5년 전인 2015년 말의 12조 3,260억원에 비해 5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그간 한국 투자자들은 이번에 빅토리아 시크릿이 소송을 건 뉴욕 맨해튼에도 많은 투자를 해 왔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 한국 투자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로 SL그린은 뉴욕에서 가장 큰 부동산 소유 회사 중 한 곳입니다. 6월 현재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87개의 오피스 및 리테일 빌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SL그린과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7년 SL그린으로부터 뉴욕 맨해튼의 ‘원밴드빌트’ 지분 29%를 인수했으며, 최근에는 SL그린과 함께 맨해튼의 원 메디슨 에비뉴 빌딩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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