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엄마가 생후 12개월된 아이와 단둘이 집에 있다가 불이 났다. 엄마는 급하게 대피하느라 아이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아이는 숨졌다. 법원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 여성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보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11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대연 부장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2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4월 아들 B군을 전기장판이 켜있는 안방 침대에 혼자 재웠다. A씨는 이후 안방과 붙어있던 작은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A씨는 이내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안방 문을 열었더니 방안은 이미 연기가 자욱했다. 켜놓은 전기장판에서 불이 난 것이다. 당황한 A씨는 집안에 가득 차있던 연기를 빼내야 한다는 생각에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A씨가 현관문을 여는 사이 불길은 더 거세졌다.
A씨는 밖으로 나가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불길은 더 번져있었다. 결국 A씨도 행인도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B군은 숨지고 말았다. 검찰은 A씨가 B군을 데리고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집을 나와 숨지게 했다고 보고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A씨가 화재 당시 아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혼자 대피해 아이가 죽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화재 시뮬레이션 결과 현관문을 개방했을 때 가시거리가 30m 정도로 시야가 양호했고, 피해자가 위치했던 침대 모서리와 방문 앞 온도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아이를 유기했다거나 유기할 의사가 있었던 것 아니라고 맞섰다. A씨 측은 “행동에 과실이 있었다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유기 의사가 있었다면 현관문을 열어 연기를 빼 보려 하거나 119에 신고하고 행인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행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건물 외부에서 촬영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안방 창문에서 연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다가 어느 순간 더는 새나오지 않았다. A씨가 현관문을 열면서 창문 밖으로 새어나갈 연기가 거실로 향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비록 피고인이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 손잡이가 뜨겁지 않았고 피해자의 얼굴이 보였다 하더라도, 별다른 망설임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손쉽게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람에 따라서는 도덕적 비난을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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