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 아마존이 유럽에서 반(反)독점 혐의로 최대 280억달러(약 34조원)의 벌금을 토해낼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디지털세 부과와 반독점조사 등 미국 정보기술(IT) 공룡을 겨냥한 EU의 공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어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1일(현지시간) 미 월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의 반독점 관련 규제기관인 EU집행위원회는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외부 판매자(서드파티 셀러)를 부당대우했다며 이르면 다음주 아마존을 상대로 이의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의신청은 EU 반독점조사의 첫 공식 조치로 사실상 소장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WSJ는 “EU 집행위가 최근 2년에 걸쳐 사전조사를 해왔다”면서 “이미 혐의문서 초안이 수개월 전부터 회람된 상태”라고 전했다.
아마존은 자사 제품에 특혜를 주기 위해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외부 판매자의 데이터를 빼돌려 이들 제품과 비슷한 독자제품을 개발, 출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혐의는 다른 판매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유통사업자이자 플랫폼 운영자라는 아마존의 이중적 지위에서 비롯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상인은 아마존이 잘 팔리는 상품이 있으면 더 싼 가격에 자사 제품을 소개하거나 온라인상에서 눈에 더욱 잘 띄는 위치에 배치한다며 불만을 품어왔다”고 지적했다.
EU가 아마존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데는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의신청을 받은 기업은 수주 내에 답해야 하고 청문회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밝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의 혐의에 대한 소명이 이뤄지면 벌금을 피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마존이 반독점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EU 규제당국은 아마존의 연간 글로벌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280억달러에 달한다고 WSJ는 전했다. EU는 또한 아마존에 불공정사업 관행을 조정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EU가 아마존에 앞서 반독점 위반으로 미국 IT 기업에 철퇴를 내린 사례는 상당하다. 지난 2018년 7월 구글이 자사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불공정하게 강권했다는 이유로 43억4,000만유로(약 5조9,1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U는 같은 해 1월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을 겨냥해 반독점법 위반으로 9억9,700만유로의 과징금을 물렸다. 물론 과징금 부과된 기업들은 EU 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아마존이 EU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는 처지가 되면서 다른 미국 IT 공룡들까지 긴장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지난해부터 구글과 페이스북을 겨냥해 아마존과 비슷한 내용의 조사를 벌여왔다. 이에 더해 대형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새로운 규제안도 올해 말까지 제출할 방침이다. 이는 IT 플랫폼이 새로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립하기 전에 규제당국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포함한다.
디지털세 부과와 함께 반독점조사 강화로 미국과 EU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달 초 미국은 글로벌 IT 기업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EU의 디지털세에 맞대응해 관세보복 조치를 내리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디지털세는 IT 기업의 본사 소재지와 관계없이 디지털서비스 매출에 따라 물리는 세금이다. 앞서 지난해 미국은 프랑스의 디지털세 도입에 맞서 와인 등 프랑스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양국은 올해 1월 관세부과를 유예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디지털세에 관한 조세원칙과 세부안 마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일단 갈등을 봉합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7,500억유로 규모의 회생기금을 제안한 EU가 세수확충을 위해 미국 기업을 겨냥해 디지털세를 포함한 과세 방안을 검토 중인 만큼 디지털세를 둘러싼 갈등은 재점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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