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서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차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제21대 국회가 시작부터 꼬여 가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법사위 위원장 확보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법사위의 ‘특수한 기능’과 입법과정상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법사위는 상임위가 심사를 마친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되기 전에 그 자구와 체계를 심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과 위치로 인해 법사위는 언제부터인가 상임위 법안에 대한 교통경찰 역할마저 수행하게 됐다. 교통경찰인 법사위가 파란불을 켜주지 않으면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도 본회의로 직행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할 일 많고 갈길 바쁜 민주당과, 거대여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권을 확보하려는 통합당의 이해관계가 법사위 위원장 쟁취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말한다.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의석 비율에 따른 위원장 배분을 지키겠다. 그러나 법사위 위원장만은 일하는 국회를 위해서 가져가야겠다. 177석을 지닌 여당이 이 정도도 할 수 없는 것인가” 통합당은 반박한다. “야당이 법사위 위원장을 차지하는 것은 국회의 관행이다. 거대여당인 민주당은 이 관행을 다수의 힘으로 깨려고 하고 있다. 민주당의 독주를 막으려면 야당의 법사위 위원장 확보가 필수다. 차라리 밟고 가라, 법사위 위원장은 내줄 수 없다.” 통합당의 명분인 관행론과 견제론에 수긍이 가지만 민주당의 입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일축해버릴 수만도 없어 보인다.
법사위를 둘러싼 이번 여야의 대립은 민주화 이후 한국 야당에 대해 허용됐던 전략적 자원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검토돼야 한다. 그러면 비단 제21대 국회뿐만 아니라 역대 국회에서 야당이 왜 법사위 위원장 확보를 사활적 이슈로 생각했는지를 조금 더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야당이 정부와 여당에 대처하는 전략은 내부전략과 외부전략으로 크게 나뉜다.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정부정책을 비판하거나, 원구성 협상에서 여당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상임위 위원장을 확보하거나,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지명자 등의 비리를 밝혀내거나, 사안별로 특검을 요구하는 것 등이 야당의 국회 내부전략에 속한다. 그 밖의 내부전략으로는 국회 내 집단농성이나 단식투쟁을 지적할 수도 있다. 한편 여론이나 국민에 직접 호소하는 장외투쟁, 시민단체와의 연대 등은 야당의 외부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과 비난, 비리폭로, 그리고 전략적 진지 확보, 농성, 외부 지원세력과의 연대 이외에 야당이 여당이나 정부를 입법이나 정책적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견제할 만한 수단은 딱히 없어 보인다. 이는 미국 의회와 비교해 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정부가 지출하는 예산을 수권법안과 세출법안을 통해 직접 작성할 수 없는 우리 국회에서 야당이 상임위 별로 예산법률 작성을 통해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시 개원 체제가 아닌 우리 국회에서 야당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청문회·공청회를 일상적으로 개최해 효과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비리를 폭로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장이 지휘하는 기관을 통해 대정부 감사기능이 수행되는 우리 현실에서 야당이 정부를 감시·감독하는 것은 가을 한 철을 빼면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이 제한된 여건 속에 처했던 역대 야당의 입장에서 법사위 위원장의 확보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의 측면에서 긴요했다. 이런 연유로 인해 법사위 위원장 배분이 과거 언젠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이것이 관행화돼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지금 제21대 국회에서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압박이 아무리 강해도 통합당은 내부전략의 핵심자산인 법사위 위원장의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21대 국회 법사위 위원장 문제는 개원 이전부터 양당의 자존심 싸움으로 크게 확대돼 그 해법이 당장 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20대 국회 공격정치의 유령이 되살아날까 많이 우려된다. 우려에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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