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예해방기념일(Juneteenth)’에 선거 유세를 재개하려다 결국 날짜를 옮기게 됐다. 인종 문제로 보수 백인층을 결집하려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이를 번복한 것인데, 이번 대선에서 이 같은 방식이 통하기는커녕 안팎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우리는 오클라호마 털사의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를 오는 19일로 계획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날은 노예해방기념일과 겹친다”며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들과 지지자들이 기념일을 존중하고 이날이 대표하는 모든 의미를 기리고자 일정 변경을 제안했다. 그 요청에 따라 집회를 20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6월19일은 남북전쟁 종전 후 텍사스주에서 마지막 흑인 노예가 해방된 날이다. 백인 경찰관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맞물려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야외 선거 유세를 이날부터 시작하겠다고 하자 거센 비난이 일었다.
털사는 흑인 학살의 아픔을 지닌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1921년 ‘블랙 월 스트리트(Black Wall Street)’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흑인 상업지구가 있었던 털사에서는 인종 갈등으로 수백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백인에게 집단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 의혹을 제기한 인종차별 전력이 있다”며 “이번 유세 역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결집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렇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부 연합군 출신 장군의 이름을 딴 군사시설의 이름을 변경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대다수 미국인이 군 기지 명칭 변경을 찬성한다는 게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보수층 역시 트럼프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며 “그의 나 홀로 행보에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2016년 대선에서 자신의 승리를 결정지은 경합주에서의 백인 유권자를 향한 것”이라며 “이 같은 전략 때문에 되레 일부 공화당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화당 내 일부 의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이들은 군 기지의 이름을 바꾸기 위한 예산안 변경을 지지하고 별도의 경찰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웨이’식 전략은 추가 경기부양책에서도 드러난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대통령은 최소 2조달러(약 2,406조원) 이상의 부양책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득세의 대대적인 삭감과 제조업 분야 일자리 회귀에 관심이 있다”며 “의약품과 마스크·인공호흡기는 미국 내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 핵심은 미국산 물건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민주당은 3조달러 이상의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감세에는 부정적이다. 공화당은 지금까지 투입된 부양책의 효과를 따지는 게 우선이라며 추가 지원책은 1조달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 선임보좌관이 추가 부양책은 8월 이전에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지만 논의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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