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우리는 치명적인 질병이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떻게 퍼졌는지 모른다.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바이러스만큼은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탓이다. 네이선 울프는 그 암흑의 영역을 가시화하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연구를 펼치는 바이러스 학자다.
울프에게는 바이러스 학자보다 ‘바이러스 헌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미국 유명 대학인 UCLA의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중앙아프리카의 열대우림과 사냥터, 동남아시아의 야생동물 시장까지 세계 전역을 돌며 잠재적 파괴력을 지닌 바이러스의 기원과 전염 요인을 분석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두고 학계에서는 ‘행동파 연구자’로 부른다.
울프의 꿈이 원래부터 바이러스 학자였던 것은 아니다. 울프는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해 원시 학자가 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우간다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퍼지는 방식에 매료돼 면역학 및 전염병으로 연구 방향을 바꿨다. 연구를 위해서는 아프리카·동남아 등 새로운 바이러스가 자주 발견되는 곳으로 가야 했다. 울프는 이들 지역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을 만나며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사냥꾼들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신종 바이러스가 어떻게 인간에게 전염되고 세계로 퍼져나가는지 연구했다. 특히 그가 10년 가까이 매달린 카메룬 사냥꾼 연구에서는 7,000개의 샘플을 수집하는 성과를 냈다. 이 외에도 울프의 연구팀은 중국과 말레이시아, 콩고, 라오스 및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러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울프는 바이러스의 발생 순간을 포착하고 그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창립한 것이 전염병의 조기 발견과 억제를 막는 비영리 연구소인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Global Viral)’다. 세계 곳곳에 질병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향후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데이터를 만들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목표다. 울프는 2008년 전염병 위험관리 솔루션 기업인 메타바이오타를 창립해 바이러스 연구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울프는 스탠퍼드대 인간생물학과 초빙교수이며 스탠퍼드대에서 학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면역학과 감염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혜자로 뽑혔으며 2005년에는 권위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 선구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떠오르는 탐험가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가 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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